강단의 재구성: 설교는 다시 목회의 중심이 될 수 있는가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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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기독교TV 미래교회연구소 KCMC Trend Salon, Issue 3, Volume 2>

강단의 재구성:

설교는 다시 목회의 중심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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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설교 중심의 교회”로 이해되어 왔다. 예배의 중심에는 설교가 있었고,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역 역시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는 일이었다. 성도들은 주일마다 설교를 들었고, 부흥회와 새벽기도회,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까지 포함하면 한 사람의 신자가 평생 듣는 설교의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그토록 많은 설교를 들었는데, 왜 성도들의 삶은 충분히 변화되지 않는가?
그토록 많은 강단이 있었는데, 왜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와 영적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설교는 여전히 목회의 중심인가, 아니면 교회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었는가?

최근 설교학과 실천신학 연구들은 이 질문을 여러 방향에서 제기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교리 설교의 약화를 지적한다. 성도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이나 교리적 가르침보다 예배 분위기, 접근성, 주차장, 식당, 유아실, 돌봄의 편의성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고, 목회자들도 이런 흐름에 맞추어 교리적 가르침보다 심리적 위로와 종교 생활의 편의성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쪽에서는 책망과 회개의 설교가 약화되고, 위로와 공감 중심의 치유 설교가 전면화되는 흐름을 주목한다. 코로나 이후 불안, 상실, 고통, 정서적 소진을 겪은 회중에게 위로의 설교가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로만 있고 죄의 직면과 회개의 초대가 사라진다면, 설교는 성도의 정서적 안정은 줄 수 있어도 신앙의 방향 전환과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다.

여기에 생성형 AI의 등장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제 목회자는 설교 자료 조사, 성경 주석, 예화 구성, 원고 작성, 교육 자료 개발에 AI를 활용할 수 있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한국 목회자의 74.8%가 AI 도구 사용 경험이 있고, 49.6%는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활용은 설교 품질과 회중 수용도에 직접적인 긍정 효과를 보이지만, 동시에 회중이 지각하는 목회자의 진정성에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복합적 메커니즘도 확인되었다.

결국 오늘의 설교 문제는 단순히 “설교를 더 잘해야 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더 깊다.

설교는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가?
설교는 회중의 상처를 위로하면서도 죄와 회개를 정직하게 다루고 있는가?
설교는 AI 시대의 효율성을 활용하면서도 목회자의 영적 진정성을 지키고 있는가?
설교는 주일 강단에서 끝나는 말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목회 구조와 연결되고 있는가?

이번 주 Trend Salon은 “설교의 회복”을 단순한 강단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목회 구조 전체의 재구성 문제로 읽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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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의 위기는 설교자의 문제가 아니라 목회 구조의 문제다

많은 교회가 여전히 설교를 중요하게 말한다. 그러나 실제 목회 구조를 보면 설교가 교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교는 주일 오전 예배의 한 순서가 되고, 교회 운영은 프로그램과 행사와 행정 중심으로 움직인다. 설교는 선포되지만, 그 설교가 소그룹, 교육, 심방, 상담, 제자훈련, 다음 주의 삶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약하다.

이 문제를 지적하는 대표적 개념이 “말씀목회”다. 말씀목회는 단순히 성경공부반을 많이 운영하는 목회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 교회가 말씀을 기초로 함께 성장해 가는 목회 구조를 의미한다. 한 연구는 한국교회 안에 프로그램과 사역은 많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설교를 중심으로 모든 사역이 통전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목회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진단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설교를 많이 하는 교회”였지만, 반드시 “설교가 목회 전체를 조직하는 교회”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설교가 예배 시간에 선포되고 끝난다면, 회중은 은혜를 받을 수는 있지만 삶의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설교가 목회의 중심이 되려면, 설교는 예배당 안에서 끝나지 않고 교회 전체의 교육과 돌봄과 훈련과 실천으로 흘러가야 한다.

예를 들어 주일 설교가 “용서”를 다루었다면, 그 설교는 단순히 감동적인 메시지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주간의 소그룹 나눔 질문은 용서의 실제적 어려움을 다루어야 한다. 심방과 상담에서는 성도들이 붙잡고 있는 분노와 상처를 복음 안에서 다루어야 한다. 교회학교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언어로 용서를 가르쳐야 한다. 가정 예배 자료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다음 주 설교는 그 실천을 다시 복음의 빛 안에서 확인하고 확장해야 한다.

이것이 말씀목회다. 설교를 잘하는 것을 넘어, 설교가 교회 전체의 삶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 회복은 설교자 개인의 전달력 향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설교 회복은 목회 구조의 회복이다. 교회가 정말 설교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아니면 설교는 예배 시간의 핵심 순서일 뿐 실제 교회 운영은 다른 논리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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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리 없는 설교는 성도를 편안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강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오늘 한국교회 설교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교리의 약화다. 교리 설교가 약화된 이유는 분명하다. 교리는 어렵게 느껴진다. 성도들의 즉각적 반응도 크지 않다. 삶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인다. 목회자 입장에서도 교리 설교는 부담스럽다. 교인들이 관심 없어 할 것 같고, 교회 성장이나 출석 증가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교리 설교에 관한 연구는 목회 현장에서 교리의 중요성이 점점 무시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성도들은 교회를 선택할 때 그 교회의 교단적 배경이나 신학적 입장보다 자신에게 제공되는 목회적 돌봄, 예배 분위기, 접근성, 편의시설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신앙 공동체의 신학적 정체성과 교회의 지향점을 담은 교리적 가르침은 조용히 사라지고, 대신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해소하고 종교 생활의 안락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설교와 목회가 기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리가 사라진 자리를 다른 것이 채운다는 점이다. 교리가 사라지면 성도는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쉽게 흔들린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구원은 무엇인지, 교회는 왜 존재하는지, 성령의 역사는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종말과 하나님 나라는 오늘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해석의 틀이 약해진다. 그러면 성도는 세속적 성공주의, 심리적 위로, 이단적 가르침, 자기중심적 신앙 해석 앞에서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교리 설교는 성도를 지적으로 무겁게 만드는 설교가 아니다. 교리 설교는 성도가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영적 뼈대를 세우는 설교다. 교리는 신앙의 언어이고, 성도가 고난과 유혹과 선택 앞에서 자기 삶을 해석하는 기준이다. 교리가 없으면 설교는 매주 좋은 이야기를 할 수는 있어도, 성도의 세계관을 형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리 설교는 단순히 조직신학 교과서를 강단에서 요약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연구는 교리 설교가 목회 철학과 연간 목회 계획 속에서 설계되어야 하며, 회중의 교육적 필요와 목회적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어떤 교리를 몇 회에 걸쳐 어느 깊이로 다룰 것인지, 설교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은 성경공부나 다른 목회 프로그램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교리는 성도의 실제 고민과 연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구원받은 신자의 삶”을 설교할 때, 단순히 교리적 진술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성도들이 실제로 묻는 질문은 더 구체적이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것만을 의미하는가? 내가 직장과 가정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교리 설교는 이러한 질문에 복음적으로 답해야 한다.

결국 교리 설교의 회복은 한국교회가 다시 성도를 “소비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우는 일이다. 교회는 편안한 종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을 형성하는 공동체다. 이 정체성을 설교가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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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치유 설교의 시대, 그러나 위로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의 설교 언어는 크게 바뀌었다. 불안한 성도, 지친 성도, 상실을 경험한 성도, 관계와 경제적 압박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교회는 위로의 언어를 건네야 했다. 이것은 필요했고, 목회적으로도 정당했다. 고통받는 회중에게 회초리만 드는 설교는 복음적이지 않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강단이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치유 설교의 강화와 책망 설교의 약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책망 설교는 약화되는 반면, 위로와 공감을 강조하는 치유 설교가 전면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시대적 요청에 대한 목회적 응답이지만, 동시에 죄의 실재를 직면하게 하고 회개와 회심을 촉구하는 설교의 기능이 약화될 위험도 동반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망 설교와 치유 설교를 단순히 대립시키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일부 책망 설교는 회중을 복음 안에서 회개로 초대하기보다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런 설교는 성도를 변화시키기보다 방어적으로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오늘의 일부 치유 설교는 회중의 상처를 어루만지지만, 죄와 책임과 순종의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그런 설교는 성도를 편안하게 할 수는 있지만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책망설교와 치유설교의 설득 메커니즘을 분석한 실증 연구는 이 지점에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연구는 기독교인 2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실험을 실시해 책망설교와 치유설교가 죄책감, 수치심, 위로감을 매개로 신앙적 태도와 행동 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연구 결과, 치유설교는 책망설교에 비해 죄책감과 수치심을 낮추고 위로감을 높였다. 그러나 위로감은 정서적 안정을 제공했지만 태도나 행동 의도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았다. 반면 죄책감은 태도와 행동 의도를 강화하는 긍정적 설득 경로를 형성했고, 수치심은 오히려 태도를 약화시켜 설득효과를 저해했다.

이 결과는 목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설교는 수치심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수치심은 “내가 잘못했다”가 아니라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부정으로 흐르기 쉽다. 수치심은 복음적 회개가 아니라 자기혐오와 방어를 낳는다. 그러나 죄책감은 다르다. 건강한 죄책감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했다”는 인식이며, 그 인식은 회개와 돌이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오늘 한국교회 강단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치유 설교도 아니고, 과거식 책망 설교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복음적 책망과 복음적 치유의 통합이다. 복음적 책망은 성도를 정죄하지 않지만 죄를 흐리지도 않는다. 복음적 치유는 성도를 위로하지만 회개의 자리로 초대한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가장 정직하게 폭로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보여주는 자리다. 그러므로 십자가적 설교는 언제나 책망과 치유를 함께 품는다.

오늘의 설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상처받았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위로하십니다.”
동시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도 하나님 앞에서 돌이켜야 할 죄인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새롭게 하십니다.”

위로 없는 책망은 폭력이 될 수 있고, 책망 없는 위로는 값싼 위안이 될 수 있다. 한국교회의 강단은 이 둘 사이의 복음적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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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I 시대의 설교, 효율성의 유혹과 진정성의 시험

생성형 AI의 등장은 설교 준비 환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이제 목회자는 본문 배경을 조사하고, 원어적 의미를 정리하고, 설교 개요를 만들고, 예화를 찾고, 소그룹 질문을 작성하고, 심지어 원고 초안을 구성하는 데 AI를 사용할 수 있다. 목회 현장에서 AI는 이미 낯선 기술이 아니다.

한 실증 연구는 생성형 AI가 한국 개신교 목회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 연구는 전국 250명의 목회자를 대상으로 AI 활용 현황과 인식을 조사하고, 25명의 목회자 심층면접과 세 개 교회의 6개월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AI 활용의 실제 효과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한국 목회자의 74.8%가 AI 도구 사용 경험이 있으며, 49.6%가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AI 활용은 설교 품질과 회중 수용도에 직접적 긍정 효과를 보였지만, 진정성 지각을 통한 부정적 매개효과도 동시에 나타났다.

이 결과는 AI 시대 설교의 핵심 딜레마를 정확히 보여준다. AI는 설교를 더 빠르게, 더 구조적으로,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소형교회 목회자처럼 모든 사역을 거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 AI는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연구의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는 소형교회의 설교 준비 시간이 33.7% 감소하고 설교 품질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설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설교는 목회자의 증언이며, 본문 앞에서 씨름한 흔적이며, 회중을 향한 목양적 책임의 표현이다. 회중은 설교의 문장이 매끄러운지만 듣지 않는다. 그들은 목회자가 이 말씀 앞에서 실제로 울었는지, 기도했는지, 자기 삶으로 통과했는지, 자기 공동체를 향해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느낀다.

AI가 설교의 효율성을 높일수록, 역설적으로 목회자의 진정성은 더 중요해진다. AI가 자료를 정리할 수는 있지만, 목회자의 회개를 대신할 수 없다. AI가 문장을 다듬을 수는 있지만, 성도 한 사람을 위해 밤새 기도한 마음을 대신할 수 없다. AI가 적용점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특정 회중의 눈물과 형편을 아는 목자의 분별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설교 원칙은 분명하다. AI는 설교자를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설교자의 연구와 준비를 보조하는 도구여야 한다. AI는 말씀 연구의 보조 도구일 뿐이며, 설교의 영적 권위는 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에서 나온다. 또한 AI가 생성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최종 책임은 그것을 채택하고 전달한 목회자에게 있다는 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AI 시대에 목회자는 더 적게 묵상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묵상해야 한다. AI가 자료의 양을 늘릴수록, 목회자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더 분별해야 한다. AI가 설교의 형태를 쉽게 만들어줄수록, 목회자는 설교의 영혼을 더 깊이 붙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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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설교는 선포이면서 동시에 대화가 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설교는 설교자가 회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로 이해되어 왔다. 이 이해는 여전히 중요하다. 설교는 단순한 강연이나 토론이 아니다. 설교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의 선포성이 있다. 그러나 오늘의 설교학은 회중을 단순히 수동적인 청중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설교와 상담의 만남을 다룬 연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설교학에서 설교자와 회중의 관계가 변화해 왔다고 지적한다. 설교자 일방주도식 설교에서 설교자와 회중의 동반적 관계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설교 전달 방식과 설교 형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설교와 기독교 상담은 모두 소통을 전제로 하며, 회중의 역할 변화는 설교 현장에 중요한 실천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설교의 권위를 약화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설교의 권위가 실제 회중의 삶 속에서 작동하게 하자는 말이다. 회중은 설교 시간에 듣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말씀을 자기 삶의 자리에서 해석하고, 질문하고, 저항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주체다. 설교가 회중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설교자는 회중의 언어와 상처와 문화와 질문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황화”다. 삶을 변화시키는 설교를 연구한 논문은 성경 본문 자체의 중요성을 지키면서도, 청중의 주어진 상황에서 말씀이 공감될 수 있도록 하는 보완된 의미의 상황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경 본문을 약화시키는 청중 중심 설교가 아니라, 본문이 오늘의 청중에게 실제로 들리도록 하는 설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의 회중은 단순하지 않다. 같은 예배당 안에도 신앙의 연수가 긴 성도와 이제 막 교회에 나온 성도가 함께 앉아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성도와 무너진 성도가 함께 앉아 있다. 전통적 신앙 언어에 익숙한 성도와 교회 언어 자체가 낯선 다음세대가 함께 앉아 있다. 한국어가 편한 성도와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성도도 있을 수 있다. 동일한 설교를 듣지만, 각자가 듣는 방식은 다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회중을 추상적 집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성도 여러분”이라는 말 뒤에는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 설교는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한다. 설교자는 텍스트의 세계와 회중의 세계를 함께 읽어야 한다. 성경을 깊이 읽는 설교자일수록 회중의 삶도 깊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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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린이와 다음세대 설교: 신앙 생태계의 문제

설교 회복을 말할 때 다음세대 설교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성인 예배의 위기만이 아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신앙 생태계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깊은 위기다. 한 연구는 인구절벽 시대의 어린이 목회와 설교를 다루면서, 어린이 신앙 교육의 회복은 설교 강단의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린이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신앙 생태계로 보고, 그 생태계의 회복을 통해 신앙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다음세대 문제는 단순히 아이들이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인구절벽은 분명 현실이지만, 더 깊은 문제는 남아 있는 아이들조차 신앙적으로 자라기 어려운 생태계 안에 있다는 점이다. 가정의 신앙교육은 약해지고, 교회학교의 시간은 줄어들고, 디지털 콘텐츠는 아이들의 세계관을 강하게 형성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 설교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나 교훈적 메시지에 머문다면 다음세대의 신앙 뿌리는 깊어지기 어렵다.

어린이 설교에도 바른 해석과 바른 전달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 형성된 하나님 이해, 복음 이해, 교회 이해는 평생의 신앙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은 착한 일을 하면 복 주시는 분”이라는 식의 도덕주의적 설교가 반복되면, 아이들은 복음을 은혜가 아니라 보상 체계로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처럼 착하게 살자”는 말만 반복되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약해지고 도덕 교육만 남게 된다.

다음세대 설교는 더 쉽지만 더 얕아서는 안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도 복음은 복음으로 전해져야 한다.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세계에 맞게, 그러나 복음의 깊이를 잃지 않고 전해야 한다. 다음세대 목회의 회복은 이벤트나 프로그램만으로 오지 않는다. 다음세대의 강단이 회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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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설교의 목적은 감동이 아니라 변화다

좋은 설교는 성도를 감동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감동이 설교의 최종 목적은 아니다. 설교의 목적은 삶의 변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단순히 행동 몇 가지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다. 성경적 변화는 존재와 행동의 통합이다. 마음의 방향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성품이 바뀌고, 결국 행동이 바뀌는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설교를 다룬 연구는 “왜 한국교회 성도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만큼 설교를 듣는데 변화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연구는 설교의 목적이 성경적 삶의 변화가 되어야 하며, 진정한 변화는 Being and Doing의 통합, 즉 존재와 행위의 통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관점의 변화, 성품의 변화, 행동의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질문은 한국교회가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설교가 은혜로웠다는 말은 많지만, 그 은혜가 실제로 성도의 돈 사용, 관계 방식, 직장 윤리, 가정생활, 사회적 책임, 약자를 대하는 태도, 교회를 섬기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설교를 듣고 눈물을 흘렸지만, 다음 날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미워하고, 같은 방식으로 욕망을 추구하고, 같은 방식으로 불의를 묵인한다면 설교는 감동에서 멈춘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설교는 반드시 적용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적용은 단순히 “이번 주 이렇게 살아봅시다”라는 행동 지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적용은 복음이 성도의 욕망과 두려움과 우상과 자기방어를 어떻게 드러내고 새롭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행동을 바꾸려면 마음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마음의 구조가 바뀌려면 복음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로 들려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단순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기 전에 “왜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를 복음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길이 열렸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삶을 변화시키는 설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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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교회 강단을 위한 다섯 가지 전략적 전환

오늘 한국교회의 설교 회복은 단순히 “설교를 더 잘하자”는 수준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설교자의 전달력, 예화 사용, 원고 구성, 목소리 훈련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단의 방향 전환이다. 설교가 무엇을 목표로 하고, 회중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며, 목회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고, 변화된 시대의 도구를 어떻게 분별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재정렬이 필요하다.

다음의 다섯 가지 전환은 한국교회 강단이 다시 목회의 중심으로 회복되기 위해 반드시 점검해야 할 핵심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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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좋은 말”에서 “복음적 해석”으로 전환해야 한다

오늘의 성도들은 이미 수많은 좋은 말을 듣고 산다. 유튜브에는 동기부여 강연이 넘쳐나고, 심리학 콘텐츠는 인간관계와 자존감 문제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자기계발서와 인문학 강연은 불안한 현대인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한다. 문제는 교회 강단도 어느 순간 이러한 “좋은 말”의 경쟁 속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설교에도 위로가 있어야 하고, 지혜가 있어야 하며, 삶의 실제적 조언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설교가 설교인 이유는 좋은 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설교는 성경 본문을 통해 인간의 현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좋은 말은 사람을 잠시 격려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적 해석은 사람이 자기 삶을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꾼다. 좋은 말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은 “왜 괜찮은지”, “무엇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 “나의 실패와 죄와 상처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고난에 대한 설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좋은 말은 “고난은 지나갑니다”, “힘내십시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복음적 설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고난 속에서 인간이 붙들고 있던 우상이 무엇인지,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고난받는 성도와 어떻게 함께하시는지, 부활 신앙이 현재의 고난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하게 하는지까지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강단은 단순한 격려의 언어에서 복음적 해석의 언어로 전환해야 한다. 설교자는 회중이 이미 알고 있는 상식적 위로를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 본문을 통해 회중이 자기 삶을 다시 보게 하는 해석자다.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좋은 말씀이었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복음 안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해야 한다.

전략적으로는 설교 준비의 첫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이 본문으로 어떤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본문은 하나님, 인간, 죄, 은혜, 교회, 세상에 대해 무엇을 새롭게 해석하게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설교의 핵심은 감동적인 문장이 아니라 복음적 관점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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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위로 중심”에서 “회복과 순종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 강단에서 위로의 언어가 강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성도들은 실제로 지쳐 있었다. 상실, 불안, 우울, 경제적 압박, 관계의 단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회중을 위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목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위로가 설교의 최종 목적이 될 때 발생한다. 성도는 위로받아야 하지만, 위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복음의 위로는 언제나 회복으로 이어지고, 회복은 다시 순종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싸매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새 마음을 주셔서 새로운 삶으로 부르시는 분이다.

최근 치유설교와 책망설교에 관한 실증 연구는 이 지점을 잘 보여준다. 치유설교는 회중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낮추고 위로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지만, 위로감 자체가 태도 변화나 행동 의도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았다. 반면 건강한 죄책감은 신앙적 태도와 행동 의도를 강화하는 경로를 형성했고, 수치심은 오히려 설득 효과를 약화시켰다.

이 결과는 강단에 중요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다. 설교는 성도를 수치심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당신은 형편없는 사람이다”, “당신의 믿음은 부족하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존재다”라는 방식의 설교는 회개가 아니라 방어와 상처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죄와 책임과 순종의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도 복음적이지 않다.

필요한 것은 수치심이 아니라 복음적 죄책감이다. 수치심은 존재를 무너뜨리지만, 복음적 죄책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직면하게 하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수치심은 “나는 끝났다”고 말하게 하지만, 복음적 죄책감은 “나는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고백하게 한다.

따라서 한국교회 강단은 위로의 설교를 회복의 설교로, 회복의 설교를 순종의 설교로 연결해야 한다. 설교는 성도의 아픔을 공감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아픔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회복을 주시는지, 회복된 성도가 어떤 순종으로 응답해야 하는지까지 안내해야 한다.

전략적으로는 설교의 흐름 안에 세 단계를 의도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다.
첫째, 회중의 현실을 정직하게 공감한다.
둘째, 그 현실을 복음 안에서 해석한다.
셋째, 복음에 근거한 구체적 순종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 구조가 없으면 설교는 위로의 메시지로 소비되고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위로, 회복, 순종이 연결될 때 설교는 성도의 삶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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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교리 설명”에서 “삶을 해석하는 교리 설교”로 전환해야 한다

교리 설교가 약화된 이유 중 하나는 교리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많은 성도들에게 교리는 딱딱하고 추상적이며, 일상과 거리가 먼 신학 용어처럼 들린다. 목회자들도 교리 설교를 하면 성도들이 지루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교리의 본래 목적은 성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교리는 성도가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 신앙의 뼈대다. 교리는 삶을 해석하는 렌즈다. 교리가 약하면 성도는 매주 감동적인 설교를 들어도 자기 삶을 일관되게 해석하지 못한다.

교리 설교에 관한 연구는 현대 교회에서 성도들이 교회의 교단적 배경이나 신학적 정체성보다 목회적 돌봄, 예배 분위기, 접근성, 편의시설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을 지적한다. 그 결과 교리적 가르침은 약해지고, 설교와 목회는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종교 생활의 편의성에 기울어질 위험이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성도들이 교리를 모른다는 차원이 아니다. 교리가 약해지면 신앙의 판단 기준이 약해진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구원이 무엇인지,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흐려진다. 그러면 성도는 세속적 성공주의, 자기중심적 신앙, 이단적 가르침, 심리적 위안 중심의 종교성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

따라서 교리 설교의 회복은 단순히 교리문답을 다시 가르치자는 의미가 아니다. 교리를 삶의 언어로 다시 번역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 교리는 단순히 “한 본질, 세 위격”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삼위일체 신앙은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사랑과 관계 안에 계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교회 공동체가 왜 개인주의적 신앙을 넘어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를 해석하게 한다.

칭의 교리도 마찬가지다. 칭의는 단순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교리적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증명에 지친 현대인에게 “너의 성취가 너의 의가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에게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아들여진 존재”라고 말한다. 이처럼 교리는 성도의 불안, 정체성, 관계, 노동, 돈, 성공, 실패를 해석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전략적으로 교회는 연간 설교 계획 안에 핵심 교리 주제를 의도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 성령, 교회, 성찬, 하나님 나라, 종말, 선교와 같은 주제들이 단발성으로 흩어지지 않고 목회 방향과 연결되어야 한다. 또한 교리 설교는 주일 강단에서 끝나지 않고, 소그룹 교재, 새가족 교육, 제자훈련, 교회학교 교육과 연결되어야 한다.

교리 설교의 목표는 성도를 신학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자기 삶을 복음의 눈으로 해석하도록 돕는 것이다. 교리가 삶을 해석하기 시작할 때, 성도는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신앙의 중심을 붙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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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AI 활용”에서 “AI 분별”로 전환해야 한다

AI 시대의 설교 논의에서 가장 흔한 질문은 “AI를 사용해도 되는가?”이다. 그러나 이제 이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많은 목회자가 AI를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 그 비율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더 중요한 질문은 “AI를 어떻게 분별하여 사용할 것인가?”이다.

생성형 AI에 관한 한 연구는 한국 목회자의 74.8%가 AI 도구 사용 경험이 있고, 49.6%가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AI 활용은 설교 품질과 회중 수용도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목회자의 진정성 지각에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복합적 결과도 확인되었다.

이 결과는 AI 시대 강단의 핵심 과제를 보여준다. AI는 설교 준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자료 조사, 본문 배경 정리, 원어 정보 확인, 설교 개요 구성, 예화 아이디어, 소그룹 질문 작성 등에서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사역 부담이 큰 목회자에게 AI는 유용한 보조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설교는 효율성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설교에는 목회자의 영적 씨름, 본문 앞에서의 회개, 회중을 향한 사랑, 공동체의 구체적 현실을 향한 분별이 담겨야 한다. AI가 만든 문장은 매끄러울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목자의 증언이 되는 것은 아니다. AI가 설교 개요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 말씀이 내 교회, 내 성도, 이번 주 이 공동체에 어떻게 선포되어야 하는지는 목회자가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강단은 AI를 단순히 활용하는 단계에서 AI를 신학적으로 분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AI 사용의 핵심 원칙은 “대체가 아니라 보조”이다. AI는 설교자의 묵상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AI는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가 될 수 없다. AI는 성령의 조명과 목회적 책임을 대신할 수 없다.

전략적으로는 교회와 목회자 개인이 AI 사용 원칙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AI는 자료 조사와 아이디어 확장에는 사용할 수 있지만, 본문 해석의 최종 판단은 목회자가 해야 한다.
AI가 제안한 예화와 정보는 반드시 사실 확인을 거쳐야 한다.
AI가 생성한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언어와 회중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
설교의 핵심 메시지와 적용은 목회자가 기도와 묵상 속에서 책임 있게 결정해야 한다.
AI 사용이 목회자의 영적 준비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AI 시대의 설교자는 더 빠른 작성자가 아니라 더 깊은 분별자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설교자의 경쟁력은 자료를 많이 아는 데 있지 않을 수 있다. AI가 자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설교자의 핵심 역량은 수많은 자료와 가능성 속에서 무엇이 복음적으로 옳고, 무엇이 이 공동체에 필요한 말씀인지 분별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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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주일 설교”에서 “주중 말씀목회”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설교를 많이 해왔다. 그러나 설교가 성도의 삶을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구조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주일에 은혜를 받고, 월요일부터 다시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는 구조가 반복되었다. 설교는 예배당 안에서는 강력했지만, 주중의 가정과 직장과 관계와 선택 속에서는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다.

말씀목회 연구는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한다. 교회 안에 많은 프로그램과 사역이 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를 중심으로 교회의 모든 사역과 회중이 생명력을 공급받는 통전적 목회 구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것은 설교가 주일 오전에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설교는 주중으로 흘러가야 한다. 성도가 설교를 다시 묵상하고, 소그룹에서 나누고, 가정에서 대화하고, 직장에서 실천하고, 다음 주 예배에서 다시 응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전략적으로 교회는 설교 후속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주일 설교와 소그룹 질문이 연결되어야 한다. 교회학교와 청소년부도 장년 설교의 핵심 흐름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도록 큰 주제 안에서 함께 움직일 수 있다. 심방과 상담도 최근 설교의 흐름과 연결될 수 있다. 가정예배 자료나 주중 묵상 콘텐츠도 주일 설교의 메시지를 반복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일 설교가 “용서”를 다루었다면, 그 주간의 소그룹 질문은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와 복음 안에서 용서를 시작하는 실제적 방법을 다루어야 한다. 가정예배 자료는 가족 안의 사과와 화해를 돕는 질문을 포함할 수 있다. 교회학교는 어린이의 언어로 용서와 화해를 가르칠 수 있다. 목회자는 심방이나 상담에서 성도들이 붙들고 있는 상처와 분노를 설교의 메시지와 연결해 다룰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설교는 한 번의 메시지가 아니라 한 주간의 목회 흐름이 된다. 성도는 설교를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보게 된다. 그리고 교회는 프로그램 중심의 조직이 아니라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가 된다.

주중 말씀목회로의 전환은 특히 다음세대와 가정 사역에서 중요하다. 어린이 목회와 설교에 관한 연구는 어린이 주변의 환경을 신앙 생태계로 보고, 신앙 생태계의 회복을 통해 건강한 신앙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다음세대 설교 역시 예배 시간의 짧은 메시지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가정, 교회학교, 부모 교육, 주중 묵상이 함께 연결되어야 한다.

결국 주일 설교에서 주중 말씀목회로의 전환은 설교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전략이다. 설교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선포된 말씀이 더 깊이 살아 움직이도록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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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가며: 설교 회복은 교회 회복이다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좋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더 세련된 콘텐츠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강력한 조직과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생명을 만들지는 못한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말씀은 단지 많이 선포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말씀은 바르게 해석되어야 하고, 복음적으로 선포되어야 하며, 회중의 삶과 연결되어야 하고, 교회 전체의 목회 구조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설교는 예배 시간의 한 순서가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며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우는 중심 사역이어야 한다.

AI 시대에도 설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정보가 넘칠수록 해석이 필요하고,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진정성이 필요하며, 위로의 말이 많아질수록 복음의 말씀이 필요하다.

오늘 한국교회 강단은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의 설교는 성도를 편안하게만 하는가, 아니면 복음 안에서 변화시키고 있는가?
우리의 설교는 교회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가, 아니면 목회 전체를 이끄는 중심인가?
우리의 설교는 AI가 정리한 좋은 원고인가, 아니면 말씀 앞에서 씨름한 목자의 증언인가?
우리의 설교는 위로를 주는가, 그리고 동시에 회개의 길로 초대하는가?

설교가 회복될 때 목회가 회복된다.
강단이 다시 말씀의 자리로 돌아올 때 교회는 다시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설교가 주일의 말로 끝나지 않고 성도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일 때, 한국교회는 다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증언 공동체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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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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