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시대, 목회자의 쉼과 안식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고찰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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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기독교TV 미래교회연구소 KCMC Trend Salon, Issue 3, Volume 6>


휴가의 계절, 목회자는 왜 쉬지 못하는가

번아웃 시대, 목회자의 쉼과 안식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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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운다. 직장에서는 휴가 일정을 조정하고, 학교는 방학에 들어가며, 가족들은 여행이나 휴식을 계획한다. 현대사회에서 휴가는 더 이상 특별한 사치라기보다 지속적으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 특히 목회자의 삶에서는 휴가와 쉼이 여전히 자연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주일 설교를 비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고, 성도의 입원이나 장례, 갑작스러운 상담이나 교회 내 갈등이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다. 휴가를 떠나더라도 휴대전화를 완전히 끄기 어렵고, 여행지에서 교회 단체대화방을 확인하거나 다음 주 설교를 준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몸은 교회를 떠났지만 정신과 감정은 여전히 목회 현장에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목회가 가진 독특한 성격과 관련된다. 목회는 일정표에 기록되는 설교, 예배, 행정, 회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도의 질병과 죽음, 부부 갈등과 자녀 문제, 경제적 위기와 신앙적 고민까지 목회자의 사역 안으로 들어온다. 누군가에게 위기가 발생하는 시간은 목회자의 근무시간과 일치하지 않으며, 성도의 고통을 들은 목회자가 그 문제를 업무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곧바로 마음에서 내려놓기도 어렵다. 특히 목회자는 지속적으로 타인의 슬픔과 불안, 분노와 상처를 듣고 돌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육체적 피로와는 다른 정서적 소진을 경험할 수 있다. 역사신학적 연구에서도 목회자의 탈진을 설명하면서 감정적 소진, 비인격화, 개인적 성취감 감소와 함께 타인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동정 피로(compassion fatigue)’의 문제를 지적한다.


문제는 이러한 피로가 한국교회의 헌신 문화 안에서 때때로 충성의 증거로 해석되어 왔다는 점이다. 목회자는 소명 받은 사람이므로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 성도들도 힘들게 교회를 섬기는데 목회자가 휴가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정서, 목회는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므로 일반적인 노동과 휴식의 기준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태도에는 목회의 거룩한 소명과 헌신을 소중하게 여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쉼 없이 자신을 소진하는 것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헌신인가.


성경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만 명령하지 않으셨다. 창조의 처음부터 일과 쉼의 리듬을 두셨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명령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을 자신의 쉼으로 초대하셨다. 따라서 목회자의 쉼은 단순한 복지나 휴가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목회자의 쉼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인간의 한계, 하나님의 주권, 목회자의 정체성, 교회의 공동체성,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목회가 무엇인지와 연결된 신학적 문제이다. 이번 트렌드살롱은 이러한 관점에서 “목회자가 얼마나 쉬어야 하는가”라는 실무적 질문을 넘어, 목회자의 쉼은 목회의 반대편에 있는가, 아니면 건강한 목회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인가라는 질문을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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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번 분석에 활용한 자료들은 목회자의 쉼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다루지만 몇 가지 공통된 결론을 제시한다. 첫째, 목회자의 번아웃은 개인의 의지나 영성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다. 목회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휴먼서비스의 특성과 영적 책임이 동시에 존재하며, 설교, 행정, 상담, 심방, 위기대응이 중첩되는 노동이다. 한 연구가 인용한 2022년 예장통합 담임목사 대상 조사에서는 당시 응답자의 약 31%가 자신을 번아웃 상태로 느꼈고, 교인 500명 이상 교회의 목회자의 경우 그 비율이 47%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성경에서 쉼은 게으름이나 사역의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적 행위로 이해된다. 하나님의 창조 후 안식은 피로로 인해 일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창조의 완성과 기쁨을 나타내는 행위이며, 안식일은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삶을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하는 시간이다. 성경적 쉼은 창조와 구원, 그리고 종말론적 소망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셋째, 기독교 역사에서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백이라기보다 말씀과 기도, 묵상과 성찰을 위해 일상의 활동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가치 있는 쉼’으로 이해되어 왔다. 고대의 otium과 scholē 개념은 쉼과 여유를 정신과 영혼의 수양을 위한 시간으로 이해했으며,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것이 말씀과 기도를 위한 ‘거룩한 쉼’으로 발전하였다.


넷째, 현대의 생산성과 성취 중심 문화는 교회와 목회 현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목회의 가치를 출석 인원, 교회 규모, 재정, 프로그램, 가시적인 성과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쉼은 자연스럽게 비생산적인 시간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안식에 관한 실천신학적 연구는 기독교적 쉼을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한 자기관리 기술이 아니라 생산성과 효율성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문화에 대한 신앙적 저항으로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목회자의 쉼은 개인의 자기관리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목회자의 영적·정서적·육체적 쉼뿐 아니라 가족, 동료, 멘토, 전문상담과 같은 관계적 지지체계가 필요하며, 교회 역시 목회자가 정기적으로 쉴 수 있도록 사역의 위임과 휴식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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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 목적과 질문

이번 트렌드살롱은 휴가철이라는 계절적 시점을 계기로 목회자의 휴식 문제를 성경적·역사신학적·실천신학적 관점과 번아웃 연구를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여기에서 휴가, 쉼, 안식은 완전히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휴가는 일정 기간 공식적인 사역과 업무를 중단하는 제도적·실천적 장치를 의미하며, 쉼은 육체적·정서적·관계적·영적 회복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사용한다. 안식은 이러한 쉼을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인간의 피조물성,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하는 신학적 개념이다.


따라서 이번 글은 첫째, 목회자는 왜 구조적으로 쉬기 어려운지, 둘째, 쉼의 부재와 번아웃이 목회자 개인과 가정, 교회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셋째, 성경은 쉼과 안식을 어떠한 의미로 제시하는지, 넷째, 기독교 역사에서는 활동과 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마지막으로 지역교회가 목회자의 건강한 쉼을 위해 어떠한 목회구조와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자료와 방법

이번 분석은 정원래의 「쉼에 관한 역사신학적 고찰」, 문병호의 「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누림」, 주종훈의 「삶의 리듬 회복과 저항의 실천으로서 안식: 예전적 목회적 고찰과 제안」, 강미애의 「목회자의 번아웃 위기 경험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이풍인의 「성경이 가르치는 쉼」을 중심 자료로 활용하였다. 각 자료는 쉼의 역사신학적 의미, 그리스도 안에서의 존재론적 쉼, 현대의 성취주의에 대한 안식의 저항적 성격, 실제 목회자가 경험하는 번아웃과 회복 과정, 그리고 목회자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쉼의 실천을 각각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개별 자료의 논의를 단순 요약하기보다 목회 현실에 대한 진단, 성경적 안식에 대한 해석, 기독교 역사 속 쉼의 전통, 그리고 지역교회의 실행과제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였다. 본문에 제시되는 통계는 이번 연구를 위해 별도로 조사한 수치가 아니라 각 자료가 인용하고 있는 기존 조사결과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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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회자는 왜 쉬기 어려운가

3.1 경계가 불분명한 목회 노동

목회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과 삶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직장에서도 퇴근 후 업무가 이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제도적으로는 출근과 퇴근, 근무일과 휴일이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목회에는 이러한 경계가 훨씬 약하다. 성도가 응급실에 입원하는 시간이나 장례가 발생하는 시간은 목회자의 휴무일과 관계가 없으며, 심각한 부부갈등이나 자녀 문제, 경제적 위기에 처한 성도가 상담을 요청하는 순간 역시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담임목사의 경우 교회에서 발생하는 예배, 교육, 행정, 재정, 인사, 심방, 상담, 장례와 결혼, 지역사회 관계 등 다양한 사역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이 가르치는 쉼」은 한국교회 목회자의 사역시간을 설명하면서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평균 9시간, 주일 약 10시간을 사역할 경우 기본적으로 55시간이 되고, 여기에 새벽기도,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와 주중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실제 사역시간이 주당 65~70시간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 수치를 모든 목회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목회가 일반적인 노동시간의 틀을 쉽게 넘어서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업무시간으로 환산되지 않는 감정노동이다. 목회자는 설교를 마쳤다고 즉시 설교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으며, 상담이 종료되었다고 성도의 문제를 곧바로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도의 질병, 가정문제, 갈등과 상처가 목회자의 내면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의 노동을 단순히 예배 횟수나 사무실에 머문 시간만으로 측정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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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타인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서적 사역

목회자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을 만났을 때 찾아가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죽음을 앞둔 가족을 만나고,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를 상담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성도를 위로하고, 자녀 때문에 고통받는 부모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러한 사역에는 필연적으로 정서적 비용이 발생한다. 번아웃에 관한 연구에서는 장기간의 스트레스와 함께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돌보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목회자가 정서적 고갈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목회자는 다른 사람에게는 상담자이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 사람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목회자는 자신의 상처와 분노, 실패와 외로움을 성도에게 그대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러한 감정이 적절히 처리되지 않고 장기간 누적될 경우 육체적 휴식만으로는 회복되기 어려운 소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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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소명’과 ‘헌신’이 쉼을 금지하는 언어가 될 때

목회는 분명 직업 이상의 소명이다. 그러나 소명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피조물성과 한계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시간을 먼저 생각하느냐”, “목회자가 휴가를 따지는 것은 세속적인 직업의식이 아니냐”는 질문은 목회자의 헌신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목회자가 쉬는 것을 영적 부족으로 해석할 위험을 가진다.


성경에서 인간의 한계는 반드시 죄의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먹고, 자고, 쉬어야 하는 유한한 존재였다. 모든 일을 자신이 처리해야 하고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공동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책임감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 목회자는 교회의 머리가 아니며, 교회의 구원자도 아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궁극적으로 교회를 돌보시는 분 역시 하나님이다. 따라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멈추는 행위는 소명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소명을 하나님께 다시 맡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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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목회자 번아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강미애의 연구가 인용한 202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담임목사 981명 대상 조사에서는 응답자 가운데 약 31%가 당시 자신을 번아웃 상태로 느꼈고, 500명 이상 규모의 교회 목회자의 경우 그 비율이 47%에 달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번아웃은 단순히 며칠 쉬면 사라지는 피곤함과 동일하지 않다. 장기간 지속되는 과도한 책임, 스트레스, 감정노동과 회복시간 부족이 누적되어 정서적·육체적 자원이 고갈되는 상태와 관련된다.


해당 내러티브 연구에서 번아웃을 경험한 목회자들은 과도한 업무량, 지속적인 스트레스, 교인들의 요구에 계속 응답해야 하는 상황, 행정업무의 과부하와 개인시간의 부족 등을 주요한 원인으로 진술하였다. 반면 회복 과정에서는 기도와 성경묵상, 영적 멘토링 등의 영성훈련뿐 아니라 충분한 휴식, 가족과 동료의 지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는 목회자의 번아웃이 단순히 “기도를 더 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영적·정서적·관계적·육체적 회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목회자의 소진은 개인의 건강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먼저 목회자 자신과의 관계가 흔들린다.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워지고, 사역에서 기쁨이 사라지며 모든 것이 의무처럼 느껴질 수 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설교를 위해 성경을 읽고 기도회를 인도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영혼을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시간은 늘어나는데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줄어드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셋째, 가족관계가 약화될 수 있다. 목회 현장에서는 교회의 긴급한 일이 가족의 일보다 우선되는 상황이 반복되기 쉽다. 이러한 일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배우자와 자녀는 의도하지 않게 교회가 자신들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넷째, 성도와의 관계 역시 영향을 받는다. 「성경이 가르치는 쉼」은 전력질주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과 눈을 맞추기 어렵다는 비유를 사용하며, 목회자와 성도가 쉼 없이 분주하게 살아갈수록 작은 문제에서도 관계적 마찰이 발생하기 쉬움을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목회자의 상태는 결국 목회의 상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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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경적 쉼의 출발점: 하나님이 먼저 쉬셨다

성경에서 쉼을 이해하는 첫 번째 출발점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안식은 피로 때문에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멈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완성하시고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적 안식은 일을 하지 않는 공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일을 바라보고 그것의 완성을 받아들이며 기뻐하는 행위다.


이러한 이해는 목회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목회자는 한 주 동안 설교하고, 성도를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며, 다음 사역을 준비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하는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의 삶 가운데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목회의 질문이 “내가 이번 주에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목회자의 쉼은 하나의 신앙고백이 된다. 내가 멈추어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내가 휴대전화를 잠시 끄더라도 하나님은 성도를 돌보신다. 내가 한 주 강단을 비워도 그리스도는 여전히 교회의 머리이시다. 쉼은 이러한 사실을 머리로 동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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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안식일과 출애굽: “너희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성경에서 안식은 창조뿐 아니라 출애굽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애굽의 노예에게 시간의 가치는 생산량으로 평가되었다. 얼마나 많은 벽돌을 만들었는지가 그들의 노동을 판단하는 기준이었으며, 쉬는 시간은 생산하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명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종과 가축, 그 공동체 안에 머무는 외국인까지 모두 쉬게 하셨다. 「성경이 가르치는 쉼」은 이러한 안식일 계명을 애굽의 노예적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유를 몸으로 기억하는 행위로 설명한다.


이 안에는 중요한 신학적 선언이 담겨 있다. 인간의 가치는 생산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 선언은 오늘의 목회자에게도 필요하다. 교회의 출석인원이 얼마나 늘었는지, 헌금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프로그램을 몇 개 만들었는지, 온라인 콘텐츠의 조회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목회를 평가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표가 목회자의 존재가치를 결정하기 시작한다면 목회 역시 애굽의 생산논리와 유사한 구조에 들어갈 위험이 있다.


성경적 안식은 목회자에게 사역의 성과가 자신의 정체성보다 먼저일 수 없다고 선언한다. 목회자는 교회를 성장시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며, 설교를 잘하기 때문에 사랑받는 존재도 아니다. 사역 이전에 그는 하나님의 자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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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와 존재의 쉼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의 중심은 단순히 일을 중단하는 데 있지 않다. 예수께서는 특정한 휴양지나 시간으로 사람을 초대하지 않고 자신에게로 오라고 초대하신다. 따라서 기독교적 쉼의 가장 깊은 중심에는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있다.


문병호의 연구는 그리스도인의 쉼을 단순히 몇 가지 짐이나 부담이 제거된 상태로 한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존재 자체가 쉼의 근거이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이 쉼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서 목회자의 번아웃을 이해할 때 중요한 문제는 ‘역할’과 ‘존재’가 지나치게 밀착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자신의 존재를 “나는 설교하는 사람이다”, “나는 교회를 성장시키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다”라는 역할로만 규정하기 시작하면 사역의 실패나 교회의 어려움이 곧 존재 전체의 실패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쉼」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세례를 받으실 때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으신 장면을 쉼과 정체성의 문제로 연결한다. 쉼은 ‘내가 무엇을 해냈는가’를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목회자의 휴가는 단순히 육체를 재충전하는 시간을 넘어 잠시 목사라는 사회적·교회적 역할에서 물러나 한 사람의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 친구로 살아보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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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쉼을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한 재충전’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

목회자의 휴식을 이야기할 때 흔히 “재충전하고 돌아오십시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은 틀리지 않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쉼을 오직 다시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재충전으로만 이해하면 인간의 쉼조차 생산성의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기계도 정비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휴대전화도 충전하면 다시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만일 목회자의 휴가 역시 더 많은 일을 수행하기 위한 정비시간으로만 이해된다면 쉼 자체의 신학적 가치는 사라진다.


실천신학적 안식 연구는 현대사회에서 ‘워라밸’이나 시간관리의 논리가 쉼을 중요하게 강조하면서도 그 목적을 다시 업무효율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하는 경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일과 쉼은 서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반복되는 일과 쉼의 리듬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따라서 목회자가 쉬어야 하는 이유는 쉬면 다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동시에 유한한 피조물이며, 하나님께서 일과 함께 쉼의 리듬을 인간의 삶 안에 두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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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안식은 성취주의에 대한 신앙적 저항이다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조직의 성공은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 가능성과 같은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교회 역시 이러한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교회 규모, 교인 수, 재정, 새로운 프로그램, 콘텐츠 조회수, 행사 참석자 수 등이 목회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사용된다. 이러한 지표가 모두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목회의 가치를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면 목회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안식에 관한 실천신학적 연구는 분주함과 성취의 압박이 인간을 끊임없는 일에 몰입시키며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삶의 주변부로 밀어낼 위험을 지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안식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생산과 성취를 절대화하는 문화에 대한 ‘저항’이다. “더 많이 해야 한다”, “더 빨라야 한다”, “더 성장해야 한다”,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명령 앞에서 인간은 안식을 통해 일정한 지점에서 멈추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목회자의 쉼은 무책임이 아니라 피조물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훈련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모든 문제를 통제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의 인정은 목회를 포기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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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독교 역사 속 ‘가치 있는 쉼’

10.1 Otium과 scholē

기독교 역사에서 쉼은 단순한 게으름과 동일시되지 않았다. 라틴어 otium은 쉼, 여유, 자유시간을 의미하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전통에서 그 의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국한되지 않았다. 특히 영어 ‘school’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scholē는 성찰과 대화, 정신과 영혼의 수양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의미했다. 고대 사상에서도 깊이 생각하고 배우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의무로부터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해한 것이다.


기독교 전통은 이러한 개념을 말씀과 기도, 묵상과 영적 성숙을 위한 시간으로 재해석하였다. 역사신학적 연구는 기독교의 otium이 단순한 육체적 편안함이나 나태가 아니라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일상의 활동을 멈추고 신앙적 현실을 묵상하는 ‘거룩한 쉼(otium sanctum)’으로 이해되었음을 보여준다.


10.2 아우구스티누스와 방해받지 않는 시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례는 목회자의 쉼을 이해하는 데 특히 흥미롭다. 그는 목회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해 일정 기간 목회업무로부터 벗어나 성경을 깊이 연구할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는 기도하고 읽으며 자신의 영혼이 책임 있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건강과 활력을 얻어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 방해받지 않는 otium을 요청하였다.


현대의 목회현장으로 옮겨보면 이것은 목회자에게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는 영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설교문을 완성하기 위한 성경읽기와 다음 교육과정을 준비하기 위한 독서만 반복하다 보면 말씀을 읽는 행위 자체가 또 하나의 업무가 될 수 있다. 목회자는 때때로 누구에게도 가르칠 필요가 없는 성경읽기와 설교로 전환하지 않아도 되는 묵상, 결과물을 만들지 않는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10.3 그레고리우스 1세: 외적 사역과 내적 삶의 균형

그레고리우스 1세의 『목회규율』은 영적 지도자가 외적인 사역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의 내면생활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며, 반대로 내적 묵상에만 머물면서 사람을 돌보는 책임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는 모세가 성막 안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묵상하고 밖에서는 백성의 짐을 돌본 모습을 중요한 모델로 제시하였다. 또한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하시는 동시에 산에 올라 기도하셨던 모습을 목회자에게 필요한 균형으로 이해하였다.


이 전통은 목회를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는 활동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목회에는 사람에게 나아가는 움직임과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움직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 밖으로만 나가고 안으로 돌아오지 않는 목회는 결국 내면의 자원을 고갈시킬 수 있다.


10.4 베네딕투스의 ‘기도하고 일하라’

베네딕투스 수도원의 전통을 상징하는 ora et labora, 즉 “기도하고 일하라”는 표현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수도원의 일상은 노동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공동체적 기도, 육체노동, 그리고 lectio divina, 즉 묵상적 성경읽기의 시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기도와 묵상을 일이 남지 않았을 때 하는 활동으로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과 기도와 독서가 일정한 시간의 리듬 속에 미리 배치되어 있었다.


역사신학적 연구는 현대사회에서 ora et labora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결국 labora, 즉 노동만 남는 위험을 지적한다. 쉼 없는 노동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고 말씀을 연구할 시간을 상실하게 할 수 있다. 이 지적은 현대 목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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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목회자의 휴가를 둘러싼 몇 가지 오해

목회자의 쉼을 어렵게 만드는 첫 번째 오해는 “쉬는 것은 게으른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성경과 기독교 전통이 말하는 쉼은 나태와 동일하지 않다. 쉼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삶을 돌아보며 영적·정신적·육체적 질서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두 번째 오해는 “좋은 목회자는 언제나 교회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목회자가 언제든 연락 가능하다는 사실은 성도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모든 문제와 의사결정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공동체가 반드시 건강한 공동체라고 볼 수는 없다. 담임목사가 며칠 자리를 비우는 순간 교회의 모든 기능이 중단된다면 그것은 목회자의 헌신을 보여주는 동시에 교회가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의 휴가는 교회의 위임과 리더십 구조를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 번째 오해는 휴가와 여행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여행은 좋은 휴식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일정이 과도한 여행은 또 다른 노동이 될 수 있다. 집에서 충분히 자고, 책을 읽고, 가족과 식사를 하며, 산책하고 아무 일정 없이 지내는 것도 충분한 휴식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갔느냐보다 일상의 목회적 요구로부터 실제로 거리를 둘 수 있었느냐이다.


네 번째 오해는 목회자에게 쉬라고 말한 뒤 실제 구조는 전혀 바꾸지 않는 것이다. 휴가 중에도 모든 결재와 보고, 상담과 문의가 그대로 목회자에게 전달된다면 그것은 명목상의 휴가에 불과하다. 강미애의 연구 역시 목회자의 번아웃 회복을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업무강도 조절과 휴식시간 보장, 영성훈련과 상담지원, 교회와 지역사회의 지지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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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목회자에게 필요한 전인적 쉼

목회자의 쉼은 육체적인 휴식 하나로 충분하지 않다. 첫째, 영적 쉼이 필요하다. 목회자는 성경을 자주 읽지만 그것이 반드시 자신의 영혼을 위한 독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한 연구, 성경공부를 인도하기 위한 자료수집, 기도회를 진행하기 위한 묵상만 반복하다 보면 말씀마저 업무가 될 수 있다. 목회자에게는 누구에게도 전달하지 않아도 되는 말씀의 시간과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기도가 필요하다. 「성경이 가르치는 쉼」 역시 목회자가 자기 영혼의 유익을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영적 멘토나 동료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둘째, 정서적 쉼이 필요하다. 목회자는 성도의 분노, 슬픔, 갈등과 상처를 장기간 듣는다. 이러한 감정들은 목회자의 내면에 흔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동료와 자신의 감정을 나누거나 필요한 경우 전문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을 받는 것을 목회자의 영적 실패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 역시 돌봄이 필요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건강한 태도다. 관련 연구 역시 목회자의 내면에 누적된 정서적 응어리를 해소할 기회와 전문적 상담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셋째, 육체적 쉼이 필요하다. 목회자는 영혼을 돌보는 사람인 동시에 몸을 가진 사람이다. 만성적인 수면부족과 과로를 영적 헌신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수면,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필요하다. 특히 「성경이 가르치는 쉼」은 주 1회의 정기 휴일과 연 1주 이상의 휴가를 보장하고, 목회계획을 모두 세운 뒤 남는 시간에 휴식을 넣는 것이 아니라 휴식계획을 먼저 수립한 뒤 사역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


넷째, 관계적 쉼이 필요하다. 성경적 쉼은 개인적인 고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식탁을 나누고 웃으며 대화하고, 관계 안에서 사랑과 이해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한 쉼이다. 목회자의 가족은 오랫동안 교회 사역의 영향 안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휴가는 배우자와 자녀가 목회자를 ‘교회 사람들의 필요에 항상 응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으로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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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안식을 구성하는 실천: 멈춤, 쉼, 즐거움, 예배

현대 기독교의 안식 논의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실천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마르바 던은 멈춤, 쉼, 받아들임, 향연을 강조하고, 도로시 배스는 쉼과 예배, 저항을, 존 마크 코머는 멈춤과 쉼, 저항과 예배를, 유진 피터슨은 멈춤과 응시, 경외를 강조한다. 이를 목회자의 삶에 적용하면 안식의 실천을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실제로 일을 멈추는 것이다. 설교준비와 회의, 행정결재, 교회 단체대화방과 업무연락으로부터 일정시간 거리를 두어야 한다. 멈춤은 외적인 업무뿐 아니라 내부의 걱정과 통제욕구로부터도 거리를 두는 훈련이다. 안식 연구에서는 이를 일을 멈추고, 원하는 것을 멈추고, 걱정을 멈추는 의도적인 훈련으로 설명한다.


두 번째는 전인적으로 쉬는 것이다. 쉼은 수면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영적, 육체적, 정서적, 지적, 관계적 차원을 포괄한다.


세 번째는 즐거움을 회복하는 것이다. 안식은 단지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고, 자연을 바라보고, 가족과 웃고, 음악과 독서를 즐기는 행위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감사로 연결될 수 있다. 마지막은 예배다. 성경적 안식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인간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다. 참된 즐거움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 공동체적 예배는 안식의 중요한 완성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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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지역교회가 경계해야 할 목회문화

지역교회는 먼저 목회자의 과로를 헌신의 정도로 평가하는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잠을 적게 자고, 휴일 없이 일하며, 몸이 아픈 상황에서도 계속 사역하는 모습을 무조건 충성된 목회의 표준으로 제시한다면 목회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단기간의 헌신은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장기간의 생활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목회자의 휴가를 개인적인 특권이나 편의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가 건강한 상태에서 성도들을 돌볼 수 있도록 휴식을 보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유익과 연결된다. 이와 함께 교회는 명목상 휴가만 제공하고 실제로는 모든 연락과 결재를 계속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쉼을 탈진 이후의 응급조치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적 안식의 특징은 반복성과 리듬에 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탈진한 뒤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매주 일정한 리듬으로 안식을 반복했다. 성경은 일주일뿐 아니라 절기, 안식년, 희년을 통해 인간의 시간 안에 쉼을 구조화하였다. 따라서 건강한 목회는 목회자가 쓰러진 뒤 장기간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기 전에 정기적으로 회복하도록 만드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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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역교회를 위한 실행 프레임

첫째, 교회는 목회자의 쉼을 연간 사역계획 안에 미리 포함해야 한다. 부흥회와 세미나, 절기행사와 교육일정을 먼저 채우고 남는 날을 휴가로 사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기적인 주간 휴일, 연간 휴가, 필요하다면 분기별 짧은 리트릿이나 연구·묵상의 시간을 먼저 설정한 뒤 사역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심은 “시간이 남으면 쉰다”는 사고에서 “쉼 역시 목회의 리듬이므로 먼저 확보한다”는 사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둘째, 목회자가 부재해도 교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사역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휴가는 위임구조를 점검하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설교, 심방, 긴급연락, 행정결재 등을 누가 담당할 것인지 사전에 정하고, 모든 정보와 권한이 담임목사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목회자가 휴가를 갈 수 있는 교회는 목회자가 필요 없는 교회가 아니라 목회가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휴가 중 연락에 대한 원칙을 정할 필요가 있다. 모든 연락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려운 상황도 존재할 수 있으므로 무엇을 긴급상황으로 판단할 것인지, 누가 먼저 대응할 것인지, 담임목사에게 연락하기 전에 어떠한 절차를 거칠 것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행정문제와 즉시 대응해야 하는 위기상황을 구별하는 것만으로도 휴가의 실효성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넷째, 목회자의 영적 돌봄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목회자가 정기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 멘토, 영적 지도자 또는 전문상담가와의 관계를 갖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번아웃에 관한 연구에서도 영성훈련뿐 아니라 가족과 동료의 지지, 사회적 지원체계가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 목회자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자신도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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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목회자의 쉼을 둘러싼 핵심 인식의 전환

목회자의 쉼을 실제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제도 못지않게 교회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많이 일하는 목회자를 충성된 목회자의 표준으로 삼는 문화에서 오래 건강하게 사역할 수 있는 목회자를 좋은 목회자로 바라보는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남는 시간에 쉬는 방식에서 쉼의 시간을 먼저 확보하고 그 안에서 사역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이동해야 하며, 휴가를 개인의 편의를 위한 시간으로 보는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목회를 위한 공동체적 구조로 이해하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목회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고는 “공동체가 사역과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는 사고로 전환되어야 한다. 쉼을 단순히 더 많은 사역을 위한 재충전으로 이해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삶의 리듬 자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목회의 성과가 목회자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문화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모든 사역보다 먼저라는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전환은 “내가 없으면 교회가 안 된다”에서 “내가 없어도 하나님은 교회를 돌보신다”로 이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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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일 년에 한 번 휴가보다 중요한 것

일 년에 한 번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건강한 쉼의 리듬이 자동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51주 동안 과도하게 일하고 일주일 동안만 쉬는 구조라면 휴가는 번아웃을 잠시 늦추는 역할은 할 수 있지만 삶의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성경에서 쉼은 일회적인 사건보다 반복되는 리듬으로 나타난다. 하루에는 밤이 있고, 일주일에는 안식의 날이 있으며, 이스라엘의 삶에는 절기와 안식년, 희년까지 존재했다.


실천신학적 연구 역시 하나님의 창조에서 나타난 ‘6일의 일과 하루의 쉼’이라는 리듬을 단순한 규칙을 넘어 인간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목사님 올해 휴가를 다녀오셨습니까?”라는 질문보다 더욱 중요한 질문은 “목사님은 평소에 건강하게 쉬고 있습니까?”일 수 있다. 휴가는 이벤트이지만 안식은 문화이며, 건강한 교회에는 목회자가 휴가를 사용하는 제도뿐 아니라 쉼을 정당한 삶의 일부로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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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목회자의 쉼도 하나의 신앙교육이다

목회자의 생활방식은 성도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신앙교육이 될 수 있다. 만일 목회자가 언제나 일하고, 모든 전화를 받고, 휴일 없이 교회에 머물며, 가족보다 교회의 요구를 언제나 우선하고, 몸이 아파도 사역을 계속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면 성도들은 “좋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한계를 무시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쉬면 안 된다”, “교회 일은 언제나 가족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배울 수 있다.


반대로 목회자가 일할 때는 최선을 다하지만 쉬어야 할 때는 쉬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동역자에게 사역을 위임하며, 하나님께 교회를 맡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성도들은 다른 신앙을 배우게 된다. 신앙은 자신을 끝없이 소모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 누리는 것이며, 인간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목회자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잘 쉬는 목회자의 모습 역시 하나의 설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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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결론

휴가철이 되면 우리는 흔히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목회자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어디로 떠날 것인가보다 무엇에서 벗어나 무엇으로 돌아올 것인가일 수 있다. 교회의 일정과 사람들의 요구,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 사역의 성과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쉼은 게으름이 아니다. 자신이 멈추더라도 하나님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믿음이다. 안식은 생산량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던 애굽의 노예적 삶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자유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거룩한 쉼은 일상의 활동을 멈추고 말씀과 기도, 묵상과 성찰을 회복하는 중요한 영적 실천으로 이해되어 왔다.


현대 목회현장에서 쉼은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쉼은 지속가능한 목회를 위한 조건이다. 번아웃에 관한 연구에서도 목회자의 회복은 개인의 정신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휴식과 영성훈련, 가족과 동료의 지지, 업무강도의 조절과 공동체적 지원이 함께 필요했다. 따라서 교회가 목회자의 휴가를 바라보면서 해야 할 질문은 단순히 “목사님이 언제 돌아오시는가”가 아니다. “우리 교회는 목회자가 건강하게 쉴 수 있는 교회인가”, “목회자가 부재해도 공동체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 “우리는 목회의 성과와 희생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오지 않았는가”, “목회자가 하나님의 종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인정하고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목회자가 휴가를 떠나는 것은 교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 반대다. 자신이 붙들고 있던 교회를 다시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목회자가 잠든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목회자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성령은 공동체 가운데 계시며, 목회자가 한 주 설교하지 않아도 그리스도는 여전히 교회의 머리이시다. 이 사실을 믿을 때 목회자는 조금 더 자유롭게 쉴 수 있고, 교회 역시 조금 더 기쁘게 목회자를 쉬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여름 목회자의 휴가를 단순한 재충전의 시간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휴가에서 돌아온 목회자가 반드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다시 인정하고, 가족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말씀 앞에 한 사람으로 서 보고, 교회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고백했다면 그 쉼은 이미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쉼은 목회의 중단이 아니다. 목회자를 다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목회의 중요한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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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정원래, 「쉼에 관한 역사신학적 고찰」, 『신학지남』.
문병호, 「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누림」, 『신학지남』.
주종훈, 「삶의 리듬 회복과 저항의 실천으로서 안식: 예전적 목회적 고찰과 제안」, 『신학지남』.
강미애, 「목회자의 번아웃 위기 경험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전주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학위논문.
이풍인, 「성경이 가르치는 쉼」, 『신학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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