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사회에서 설교와 정치의 관계는 더 이상 주변적 주제가 아닙니다. 사회 전체의 갈등 인식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고, 그 중심에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93%가 한국사회의 갈등을 심각하다고 보았고, 가장 심각한 갈등 집단으로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꼽혔습니다. 동시에 최근에는 갈등의 원인이 단순한 빈부격차보다 가치관 차이와 이해 대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주변인과 이웃에 대한 신뢰도도 최근 몇 년 사이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이는 설교가 더 이상 개인의 내면 문제만 다루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분열된 사회 속에서 강단은 공적 책임과 분별의 문제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에 대한 기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보다 정치 뉴스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고, 교회의 정치 개입에도 더 적극적입니다. 반면 성도는 교회의 정치 불개입을 더 선호하며, 특히 설교 시간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는 매우 낮은 수용도를 보입니다. 성도의 13%만이 설교에서의 정치적 발언을 허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고, 정치적 설교와 기도가 교회에 긍정보다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응답이 성도와 목회자 모두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교회 안 정치 토론 이후 관계가 멀어졌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늘의 핵심 과제가 “정치를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설교학 연구 역시 이 점을 뒷받침합니다. 최근 연구들은 한국교회 설교의 문제를 설교의 사사화, 곧 메시지가 개인의 위로와 내면 문제에만 머무는 경향에서 찾습니다. 설교는 본래 공공성을 가지며, 교회와 성도가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사명까지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입니다. 동시에 정치적 설교는 특정 정당이나 진영의 입장을 반복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며,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와 윤리를 성서의 권위 아래 제시하고, 회중 스스로가 분별하도록 돕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됩니다. 즉 오늘 필요한 것은 정파적 설교가 아니라 공공적 설교, 선동적 설교가 아니라 분별을 형성하는 설교입니다.
따라서 오늘 한국교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설교는 정치에 침묵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치의 언어를 강단으로 가져와야 하는가. 이 글은 그 두 선택지 사이에서, 설교가 어떻게 공공성을 회복하면서도 정파성을 경계할 수 있는지, 그리고 목회적 분별을 형성하는 강단이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목차
1. 서론
2. 연구 목적과 질문
3. 자료와 방법
4. 문제 배경: 왜 지금 설교와 정치인가
5. 현황 분석 1: 한국사회는 양극화와 신뢰 약화의 국면에 들어서 있다
6. 현황 분석 2: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에 대한 기대는 엇갈린다
7. 현황 분석 3: 한국교회 설교는 공공성 상실과 정파성의 위험 사이에 놓여 있다
8. 현황 분석 4: 오늘의 정치 설교는 ‘정당 지지’보다 ‘공적 분별 형성’이 더 중요하다
9. 논의: 설교는 정치 선동이 아니라 공공적 목회 행위여야 한다
10. 실행 프레임 제안: 양극화 시대 강단 재구성을 위한 4가지 방향 10.1 공공성의 회복 10.2 정파성의 절제 10.3 회중의 분별 형성 10.4 교회의 대화 역량 강화
11. 결론
1. 서론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설교를 교회의 중심 사역으로 여겨 왔습니다. 실제로 예배와 설교는 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성도의 세계관과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환경 속에 놓여 있습니다. 사회 전체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고, 정치적 양극화는 일상과 관계, 공동체의 분위기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강단은 정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설교가 정치 현실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느냐에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서는 정치 문제를 강단에서 다루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실제로 성도들은 설교 시간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매우 낮은 수용도를 보이며, 교회 내 정치적 토론에도 강한 거리두기 태도를 보입니다. 동시에 목회자는 성도보다 정치 뉴스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고, 교회의 정치 참여에도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 간극은 오늘의 설교가 단순히 사회 이슈를 다룰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와 회중 사이의 기대 차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결국 오늘 설교와 정치의 문제는 “강단이 정치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설교는 어떻게 세상의 갈등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교회를 정파적 충성의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을 살아내는 공동체로 세울 수 있는가. 이 글은 바로 이 질문을 다루고자 합니다.
2. 연구 목적과 질문
본 연구의 목적은 설교와 정치의 관계를 찬반 논쟁 차원에서 반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교회 안의 긴장 속에서, 설교가 왜 다시 공공성의 문제로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강단이 실천적으로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데 있습니다.
이 글은 네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첫째, 오늘 한국사회는 어떤 갈등 구조 속에 있으며, 왜 이 문제가 강단과 무관하지 않은가. 둘째,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에 대한 목회자와 성도의 인식은 어떻게 다른가. 셋째, 설교학 연구는 정치와 설교의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는가. 넷째, 오늘 한국교회는 설교를 통해 정파성이 아니라 공공적 분별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가.
3. 자료와 방법
본 연구는 세 가지 층위의 자료를 함께 읽는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첫째, 사회 전반의 갈등 구조와 신뢰 변화를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한국사회 갈등과 통합」, 「2025 한국인의 가치관 변화(2)」를 통해 이념 갈등, 가치관 충돌, 신뢰 약화, 공동체 의식 변화 등을 검토했습니다.
둘째, 교회 안에서 정치와 설교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기독교인의 정치 의식 지형 조사」를 통해 성도와 목회자의 정치 뉴스 관심도, 교회의 정치 개입 태도, 설교와 기도 속 정치 발언 수용성, 정치 토론의 관계적 영향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셋째, 설교학과 공공신학 관련 학술 자료입니다. 설교의 공공성, 정치적 설교, 사회적 이슈 설교, 예언자적 설교에 관한 최근 연구들을 검토했습니다. 이 연구들은 설교의 사사화, 설교의 공공성 회복, 정파성과 공공성의 구분, 설교자의 포지셔닝, 회중의 분별 형성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설교와 정치의 관계를 단순히 위험한 주제로 규정하거나, 반대로 강단의 적극적 정치화를 주장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회 갈등의 구조, 교회 내부의 수용성, 설교학적 토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읽으려는 데 있습니다.
4. 문제 배경: 왜 지금 설교와 정치인가
지금 한국사회는 갈등이 일시적으로 높아진 상황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양극화가 깊어지는 국면에 들어서 있습니다. 국민의 93%가 한국사회의 갈등을 심각하다고 인식했고, 가장 심각한 갈등 집단으로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이 꼽혔습니다. 최근에는 갈등의 원인도 단순히 경제적 격차보다는 각자 이익 추구, 개인과 집단 간 가치관 차이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의 갈등은 삶의 조건만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의 충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가치관 조사에서는 가까운 관계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친분 있는 지인과 이웃에 대한 신뢰가 최근 3년 사이 큰 폭으로 떨어졌고, 국회·검찰·언론 등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도도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오늘의 사회가 단순히 의견이 다른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신뢰하며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 자체가 약화된 사회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이런 시대에 설교가 정치와 무관한 순수한 내면의 언어로만 남을 수는 없습니다. 회중은 교회 밖에서 이미 정치적 긴장, 사회적 갈등, 가치 충돌, 신뢰의 해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회중의 실제 삶을 다루는 행위라면, 설교는 자연스럽게 공적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마주함의 방식이 정파적 선동이 될 것인지, 아니면 공공적 분별과 공동체적 성숙을 이끄는 방식이 될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5. 현황 분석 1: 한국사회는 양극화와 신뢰 약화의 국면에 들어서 있다
오늘 한국사회의 갈등은 단순히 크다는 수준을 넘어 상시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90%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고, 그중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은 가장 심각한 갈등 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념 갈등은 단지 정치 뉴스의 언어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관계와 일상적 판단, 공동체의 대화 분위기까지 규정하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갈등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조사에서는 가치관 차이와 이해 대립이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더 많이 지목됩니다. 이는 오늘의 사회 갈등이 “누가 더 가난한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무엇을 선으로 볼 것인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라는 가치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설교가 세계관과 가치 판단을 다루는 행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상황은 강단과 직접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가까운 관계에 대한 신뢰 하락은 교회 공동체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지인과 이웃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더 쉽게 서로를 의심하고, 갈등을 감당할 공통의 기반을 잃고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 역시 같은 사회 안에 존재하는 만큼 이 변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강단이 공공성의 언어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사회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신뢰와 대화 능력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6. 현황 분석 2: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에 대한 기대는 엇갈린다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의 문제는 단순히 외부 이슈의 유입이 아닙니다. 이미 교회 내부에서 목회자와 성도의 기대가 상당히 다르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치 뉴스에 관심이 많다고 응답한 비율은 성도 64%, 목회자 75%로 목회자가 더 높았고, 정치 뉴스 습득 경로에서도 목회자는 인터넷 포털과 유튜브 이용 비중이 성도보다 높았습니다. 즉 목회자는 성도보다 정치 이슈에 더 자주 노출되고,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교회의 정치 개입에 대한 태도는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성도는 교회가 정치 문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더 높았고, 목회자는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응답이 더 높았습니다.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목회자가 훨씬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이 차이는 강단에서 정치 문제를 다룰 때 단순히 “옳은 내용을 말하면 된다”는 접근이 통하지 않는 이유를 보여 줍니다. 회중은 이미 수용성의 측면에서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설교 시간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수용도는 매우 낮습니다. 성도는 개인적 모임에서의 정치 발언에도 절반 이하의 동의만 보였고, 설교에서의 정치적 발언 허용도는 13%에 그쳤습니다. 정치적 설교와 기도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성도와 목회자 모두 부정적 영향이 긍정보다 더 크다고 응답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강단이 정치 현실을 다룰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방식이 기존의 직접적 정치 발언이나 진영적 언어로는 공동체를 세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교회 안 정치 토론에 대해 성도와 목회자 모두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고, 정치 토론 후 성도 절반 가까이가 관계가 멀어졌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정치 문제 자체보다 그것을 다루는 방식과 공동체적 역량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7. 현황 분석 3: 한국교회 설교는 공공성 상실과 정파성의 위험 사이에 놓여 있다
설교학 연구는 오늘 한국교회 설교의 중요한 문제로 설교의 사사화를 지적합니다. 이는 설교의 메시지가 개인의 위로, 내면적 결단, 사적 신앙생활에만 머무는 경향을 뜻합니다. 이런 설교는 공동체 전체의 성숙과 변화, 사회적 책임,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공적 사명을 충분히 다루지 못합니다. 설교가 회중 개인의 선택과 감정 차원으로만 축소될 때, 교회가 사회 속에서 어떤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기능도 약화됩니다.
서지마의 연구는 이 문제를 보다 분명하게 정리합니다. 설교는 본래 공공성을 가지며, 하나님께서 신자와 교회에게 맡기신 공적 영역에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설교는 오랫동안 개인의 일상과 사적 영역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고, 그 결과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적 반응을 형성하는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이 점에서 설교의 공공성 회복은 선택적 추가과제가 아니라, 설교가 설교답기 위해 필요한 본래적 회복입니다.
그러나 공공성을 회복한다고 해서 곧바로 정치적 설교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편에는 정파성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장형철의 연구는 한국 개신교 보수 진영의 정치 담론이 정권에 따라 지지와 비판의 방향을 달리하며, 특정한 자기 정체성과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해 왔다고 분석합니다. 정치 담론이 신앙 공동체를 세우기보다 진영의 경계와 적대감을 강화할 때, 그것은 공공적 설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설교가 될 위험이 큽니다.
따라서 오늘 강단은 두 가지 위험을 동시에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는 정치와 사회를 전혀 말하지 않는 사사화의 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정당과 진영의 언어를 강단에 이식하는 정파화의 위험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둘을 넘는 제3의 길, 곧 공공성을 가지되 정파성은 절제하는 설교의 형식입니다.
8. 현황 분석 4: 오늘의 정치 설교는 ‘정당 지지’보다 ‘공적 분별 형성’이 더 중요하다
정치적 설교를 다룬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강조합니다. 정치적 설교는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직접 지지보다,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윤리를 성서의 권위 아래 제시하는 설교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윤석민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설교는 회중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책임을 동반해야 하며, 공감 가능해야 합니다. 또한 설교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보다, 회중이 스스로 생각하고 분별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적 정치 설교는 세대 차이와 사회적 현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중요합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서로 다른 정치사회적 기억을 가진 세대가 함께 존재하며, 이 때문에 설교가 정파적 언어로 흐를 경우 공동체의 긴장이 쉽게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설교는 우선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절대적 가치, 곧 정의, 책임, 공동선, 사회적 재통합, 비폭력적 태도 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제안됩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 설교 연구는 설교자의 포지셔닝을 “알지 못함”과 “곁에 섬”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설교자가 모든 사안에 대해 즉각적이고 단정적인 해답을 내놓는 전문가처럼 서기보다, 회중과 함께 현실을 읽고, 고통과 갈등의 현장 곁에 서서, 말씀 안에서 분별을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태도는 정치 설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강단은 모든 사안을 결론 내리는 판정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공동체가 더 성숙한 판단을 하도록 돕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의 정치 설교는 특정 정치세력을 향한 충성심을 조직하는 설교가 아니라, 분열된 시대에 회중의 양심과 공동체의 공적 책임을 깨우는 설교여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 설교를 정파화에서 구해 내는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9. 논의: 설교는 정치 선동이 아니라 공공적 목회 행위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종합하면, 오늘 설교와 정치의 문제는 세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이념 갈등과 신뢰 약화가 심화된 양극화 국면에 들어서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정치에 대한 목회자와 성도의 기대가 크게 엇갈립니다. 따라서 오늘 강단의 과제는 정치 참여의 확대 자체보다, 공공적 분별을 형성하는 방식의 재구성에 있습니다.
이 점에서 설교는 정치 선동이 아니라 공공적 목회 행위여야 합니다. 설교는 정치를 회피할 수 없습니다. 회중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 정치와 사회 구조, 갈등과 불의, 가치 충돌이 깊이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가 곧바로 특정 진영의 언어를 반복하는 순간, 강단은 복음의 공공성을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공공적 목회 행위로서의 설교는 세 가지 특징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둘째, 정파적 분노를 복음으로 오인하지 않습니다. 셋째, 회중이 공동체 안에서 더 성숙한 판단과 책임을 감당하도록 돕습니다. 다시 말해 공공적 설교는 정치를 말하되, 정치적 흥분을 조직하는 대신 공적 양심을 형성하는 설교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정치적 발언의 양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를 다루는 설교의 질을 높이는 일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분리된 피난처가 아니라면, 강단은 세상의 갈등을 성경의 빛 아래 해석하고 공동체의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향 제시는 진영의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 곧 진실, 정의, 책임, 화해, 공동선의 언어여야 합니다.
10. 실행 프레임 제안: 양극화 시대 강단 재구성을 위한 4가지 방향
10.1 공공성의 회복
첫째 방향은 설교를 다시 공적 책임의 언어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단이 매주 정치 현안을 해설하거나 특정 정책을 평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회중이 살아가는 실제 삶의 자리와 사회적 현실을 설교 안에서 지속적으로 연결해 주는 일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의 설교는 개인의 위로, 내면의 평안, 신앙적 결단을 강조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직장과 가정, 지역사회와 국가 속에서 어떤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룹니다. 그 결과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는 경건한 언어를 듣지만, 교회 밖 현실을 해석할 성경적 틀은 충분히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공공성의 회복은 “정치 설교를 더 많이 하자”가 아니라, 설교의 주제와 적용 범위를 넓히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의, 진실, 공동선, 약자 보호, 책임, 화해, 권력 사용, 시민적 태도, 공적 정직성과 같은 주제는 특정 정당의 의제가 아니라 성경적 삶의 일부로 꾸준히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교회력 설교나 본문강해 속에서도 이런 연결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선지서 본문에서는 권력과 우상 문제를, 복음서 본문에서는 공동체 윤리와 이웃 사랑을, 바울서신에서는 질서와 책임, 양심과 자유의 문제를 공공적 차원까지 확장하여 다룰 수 있습니다.
실천적으로는 교회가 연간 설교 기획 단계에서부터 “공공적 주제”를 미리 배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1년에 한두 차례만 사회 문제를 특별 설교로 다루는 방식보다, 설교 시리즈 전체 안에 공동체성, 책임, 이웃, 사회적 약자, 진실과 분별, 공동선의 주제를 분산 배치하는 방식이 훨씬 자연스럽고 저항도 적습니다. 또한 설교문 작성 단계에서 “이 메시지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가, 아니면 공동체와 사회적 차원까지 열어 주는가”를 점검하는 질문을 넣을 수 있습니다. 결국 공공성의 회복은 강한 정치 발언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세상 속에서 신앙적으로 살아갈 언어를 강단이 꾸준히 제공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10.2 정파성의 절제
둘째 방향은 강단에서 정파적 언어를 절제하는 것입니다.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말은 종종 곧바로 정치적 적극성으로 오해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지점이 가장 위험합니다. 설교자가 현실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도로 말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특정 정당, 특정 인물, 특정 진영의 언어를 반복하게 되면 회중은 복음의 해석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 표명을 듣는다고 느끼게 됩니다. 특히 한국교회처럼 세대와 계층, 정치 성향이 다양한 회중이 함께 있는 공동체에서는 이런 방식이 곧바로 공동체의 긴장과 이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파성의 절제는 단지 표현 수위를 낮추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강단의 언어 질서를 다시 세우는 문제입니다. 설교자는 정치적 사안을 다룰 때 “누구 편에 설 것인가”보다 “무엇이 성경적으로 문제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정당 이름, 후보 평가, 선거 구호, 진영 프레임을 반복하는 대신, 그 사안 안에 들어 있는 더 근본적인 가치 문제를 끌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정, 생명, 책임, 진실, 권력 남용, 공동체 파괴, 혐오와 배제 같은 범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회중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충성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앞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게 됩니다.
실천적으로는 설교 준비 과정에서 몇 가지 자가 점검 기준을 둘 수 있습니다. 첫째, 이 내용이 성경 본문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최근 뉴스 소비에서 바로 가져온 반응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 특정 진영에 적용할 말이 아니라면 반대 진영에도 같은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셋째, 설교를 들은 회중이 “누구를 더 미워해야 하는가”보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묻게 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넷째, 설교자가 개인적으로 강한 정치적 감정을 가진 사안일수록 초고를 바로 사용하지 않고 하루나 이틀 정도 숙성시키는 절차도 유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파성의 절제는 침묵이 아니라, 복음의 권위를 정당의 언어보다 위에 두는 훈련입니다.
10.3 회중의 분별 형성
셋째 방향은 회중이 스스로 분별하도록 돕는 설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정치와 관련된 설교가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종종 회중의 분별을 돕기보다 설교자의 결론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양극화 시대에 공동체를 세우는 강단은 “정답을 대신 내려주는 강단”보다 “분별의 틀을 제공하는 강단”이어야 합니다. 오늘 회중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사안에 대한 즉각적 결론보다, 무엇을 기준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경적 안목입니다.
이를 위해 설교는 설명, 해석, 질문, 성찰, 적용의 흐름을 보다 의식적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설교는 현실을 단순화하지 않고 설명해야 합니다. 어떤 사회 문제든 그 배경과 구조가 있으며, 회중이 느끼는 감정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설교는 그 현실을 성경의 큰 가치 틀 안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편적 구절 인용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인간의 죄성, 공동선, 정의, 화해, 책임과 같은 더 큰 틀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 설교는 회중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떤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누구를 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우리의 말과 태도는 공동체를 살리는가 무너뜨리는가와 같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적용은 특정 정치 행동을 지시하는 방식보다, 성도가 공적 공간에서 어떤 태도와 윤리를 가져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합니다.
실천적으로는 설교문 안에 “회중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을 의도적으로 넣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문제를 단순히 내 편과 남의 편의 문제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진실을 확인하기보다 분노를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말은 정의를 세우는가, 아니면 적대감을 키우는가” 같은 질문은 회중을 사유하게 만듭니다. 또한 교회는 설교 후 소그룹 나눔 질문을 제공하여, 설교의 메시지가 곧바로 정치 논쟁으로 흐르지 않고 신앙적 성찰로 이어지게 도울 수 있습니다. 결국 건강한 정치 관련 설교는 회중을 설교자의 결론에 종속시키지 않고, 말씀 앞에서 더 성숙한 판단을 하도록 훈련하는 설교입니다.
10.4 교회의 대화 역량 강화
넷째 방향은 강단 바깥에서 교회의 대화 역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교회가 정치 문제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이 주제를 한 번 꺼내는 순간 공동체 안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거나 관계가 악화되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가 보여 주듯, 교회 안 정치 토론은 쉽게 관계적 거리 증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정치가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서로 다른 의견을 신앙 안에서 다루는 훈련을 충분히 해 오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설교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공동체가 안전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대화 역량 강화의 핵심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말하자”가 아니라, “어떻게 다르게 말하면서도 공동체로 남을 것인가”를 배우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교회 안에 대화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정죄하지 않기, 정치 성향으로 신앙을 판단하지 않기,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사실처럼 말하지 않기, 말하기보다 먼저 듣기, 감정을 표현하되 공격하지 않기 같은 기본 규칙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 규칙 없이 정치 대화를 열면, 결국 말이 센 사람이나 확신이 강한 사람 중심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실천적으로는 설교 후 곧바로 자유토론을 붙이는 방식보다, 단계적 구조가 더 안전합니다. 예를 들어 첫 단계는 교육입니다. 성경적 공공성, 기독교 시민성, 진실한 말하기, 갈등 속 그리스도인의 태도 같은 주제를 다루는 짧은 교육이 먼저 필요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소그룹 리더 훈련입니다. 리더들이 의견 충돌 상황에서 중재하고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정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제한된 포럼 운영입니다. 전체 자유토론보다, 진행자가 있고 발언 규칙이 분명한 소규모 포럼이나 질의응답이 더 적절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후속 목양입니다. 정치 대화 이후 상처받거나 불편함을 느낀 성도를 살피는 후속 접촉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교회가 정치 관련 공개 포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규모와 문화에 따라, 어떤 곳은 소그룹 나눔 질문 제공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고, 어떤 곳은 성인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강단이 던진 메시지가 공동체 안에서 왜곡되거나 폭발하지 않도록, 이를 받아낼 대화의 그릇을 교회가 함께 준비하는 것입니다. 설교가 씨를 뿌린다면, 대화 구조는 그 씨가 관계 파괴가 아니라 공동체 성숙으로 자라게 하는 토양입니다. 결국 양극화 시대에 건강한 강단은 혼자 말 잘하는 강단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더 성숙하게 듣고 말하도록 돕는 강단이어야 합니다.
11. 결론
설교는 정치 앞에서 침묵할 수 없습니다. 회중이 살아가는 현실이 이미 갈등과 양극화, 가치 충돌, 신뢰 붕괴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는 정치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와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강단은 복음의 공공성을 드러내기보다, 정파적 충성의 도구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질문은 “설교가 정치적이어야 하는가”가 아닙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설교는 어떻게 공공성을 회복하면서도 정파성을 경계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강단이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되 진영의 분노를 반복하지 않고, 회중의 양심과 공동체의 분별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는 데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정치적 열정보다 목회적 분별입니다. 그리고 그 분별은 결국 설교에서 시작됩니다. 양극화 시대의 강단은 어느 편의 확성기가 아니라, 분열된 사회 한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공동체적 책임을 다시 배우게 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설교가 그렇게 공공성을 회복할 때, 강단은 정치에 휩쓸리는 자리가 아니라 교회를 다시 세우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목회데이터연구소. 「기독교인의 정치 의식 지형 조사」. 『넘버즈』 292호, Koreadata.
목회데이터연구소. 「한국사회 갈등과 통합」. 『넘버즈』 314호, Koreadata.
목회데이터연구소. 「2025 한국인의 가치관 변화 (2)」. 『넘버즈』 319호, Koreadata.
<CTS미래교회연구소 KCMC Trend Salon, Issue 2, Volume 8>
설교는 정치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양극화 시대, 강단의 공공성과 목회적 분별
요약
오늘 한국사회에서 설교와 정치의 관계는 더 이상 주변적 주제가 아닙니다. 사회 전체의 갈등 인식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고, 그 중심에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93%가 한국사회의 갈등을 심각하다고 보았고, 가장 심각한 갈등 집단으로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꼽혔습니다. 동시에 최근에는 갈등의 원인이 단순한 빈부격차보다 가치관 차이와 이해 대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주변인과 이웃에 대한 신뢰도도 최근 몇 년 사이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이는 설교가 더 이상 개인의 내면 문제만 다루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분열된 사회 속에서 강단은 공적 책임과 분별의 문제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에 대한 기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보다 정치 뉴스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고, 교회의 정치 개입에도 더 적극적입니다. 반면 성도는 교회의 정치 불개입을 더 선호하며, 특히 설교 시간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는 매우 낮은 수용도를 보입니다. 성도의 13%만이 설교에서의 정치적 발언을 허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고, 정치적 설교와 기도가 교회에 긍정보다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응답이 성도와 목회자 모두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교회 안 정치 토론 이후 관계가 멀어졌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늘의 핵심 과제가 “정치를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설교학 연구 역시 이 점을 뒷받침합니다. 최근 연구들은 한국교회 설교의 문제를 설교의 사사화, 곧 메시지가 개인의 위로와 내면 문제에만 머무는 경향에서 찾습니다. 설교는 본래 공공성을 가지며, 교회와 성도가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사명까지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입니다. 동시에 정치적 설교는 특정 정당이나 진영의 입장을 반복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며,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와 윤리를 성서의 권위 아래 제시하고, 회중 스스로가 분별하도록 돕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됩니다. 즉 오늘 필요한 것은 정파적 설교가 아니라 공공적 설교, 선동적 설교가 아니라 분별을 형성하는 설교입니다.
따라서 오늘 한국교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설교는 정치에 침묵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치의 언어를 강단으로 가져와야 하는가. 이 글은 그 두 선택지 사이에서, 설교가 어떻게 공공성을 회복하면서도 정파성을 경계할 수 있는지, 그리고 목회적 분별을 형성하는 강단이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목차
1. 서론
2. 연구 목적과 질문
3. 자료와 방법
4. 문제 배경: 왜 지금 설교와 정치인가
5. 현황 분석 1: 한국사회는 양극화와 신뢰 약화의 국면에 들어서 있다
6. 현황 분석 2: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에 대한 기대는 엇갈린다
7. 현황 분석 3: 한국교회 설교는 공공성 상실과 정파성의 위험 사이에 놓여 있다
8. 현황 분석 4: 오늘의 정치 설교는 ‘정당 지지’보다 ‘공적 분별 형성’이 더 중요하다
9. 논의: 설교는 정치 선동이 아니라 공공적 목회 행위여야 한다
10. 실행 프레임 제안: 양극화 시대 강단 재구성을 위한 4가지 방향
10.1 공공성의 회복
10.2 정파성의 절제
10.3 회중의 분별 형성
10.4 교회의 대화 역량 강화
11. 결론
1. 서론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설교를 교회의 중심 사역으로 여겨 왔습니다. 실제로 예배와 설교는 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성도의 세계관과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환경 속에 놓여 있습니다. 사회 전체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고, 정치적 양극화는 일상과 관계, 공동체의 분위기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강단은 정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설교가 정치 현실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느냐에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서는 정치 문제를 강단에서 다루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실제로 성도들은 설교 시간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매우 낮은 수용도를 보이며, 교회 내 정치적 토론에도 강한 거리두기 태도를 보입니다. 동시에 목회자는 성도보다 정치 뉴스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고, 교회의 정치 참여에도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 간극은 오늘의 설교가 단순히 사회 이슈를 다룰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와 회중 사이의 기대 차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결국 오늘 설교와 정치의 문제는 “강단이 정치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설교는 어떻게 세상의 갈등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교회를 정파적 충성의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을 살아내는 공동체로 세울 수 있는가. 이 글은 바로 이 질문을 다루고자 합니다.
2. 연구 목적과 질문
본 연구의 목적은 설교와 정치의 관계를 찬반 논쟁 차원에서 반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교회 안의 긴장 속에서, 설교가 왜 다시 공공성의 문제로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강단이 실천적으로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데 있습니다.
이 글은 네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첫째, 오늘 한국사회는 어떤 갈등 구조 속에 있으며, 왜 이 문제가 강단과 무관하지 않은가.
둘째,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에 대한 목회자와 성도의 인식은 어떻게 다른가.
셋째, 설교학 연구는 정치와 설교의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는가.
넷째, 오늘 한국교회는 설교를 통해 정파성이 아니라 공공적 분별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가.
3. 자료와 방법
본 연구는 세 가지 층위의 자료를 함께 읽는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첫째, 사회 전반의 갈등 구조와 신뢰 변화를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한국사회 갈등과 통합」, 「2025 한국인의 가치관 변화(2)」를 통해 이념 갈등, 가치관 충돌, 신뢰 약화, 공동체 의식 변화 등을 검토했습니다.
둘째, 교회 안에서 정치와 설교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기독교인의 정치 의식 지형 조사」를 통해 성도와 목회자의 정치 뉴스 관심도, 교회의 정치 개입 태도, 설교와 기도 속 정치 발언 수용성, 정치 토론의 관계적 영향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셋째, 설교학과 공공신학 관련 학술 자료입니다. 설교의 공공성, 정치적 설교, 사회적 이슈 설교, 예언자적 설교에 관한 최근 연구들을 검토했습니다. 이 연구들은 설교의 사사화, 설교의 공공성 회복, 정파성과 공공성의 구분, 설교자의 포지셔닝, 회중의 분별 형성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설교와 정치의 관계를 단순히 위험한 주제로 규정하거나, 반대로 강단의 적극적 정치화를 주장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회 갈등의 구조, 교회 내부의 수용성, 설교학적 토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읽으려는 데 있습니다.
4. 문제 배경: 왜 지금 설교와 정치인가
지금 한국사회는 갈등이 일시적으로 높아진 상황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양극화가 깊어지는 국면에 들어서 있습니다. 국민의 93%가 한국사회의 갈등을 심각하다고 인식했고, 가장 심각한 갈등 집단으로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이 꼽혔습니다. 최근에는 갈등의 원인도 단순히 경제적 격차보다는 각자 이익 추구, 개인과 집단 간 가치관 차이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의 갈등은 삶의 조건만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의 충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가치관 조사에서는 가까운 관계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친분 있는 지인과 이웃에 대한 신뢰가 최근 3년 사이 큰 폭으로 떨어졌고, 국회·검찰·언론 등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도도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오늘의 사회가 단순히 의견이 다른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신뢰하며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 자체가 약화된 사회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이런 시대에 설교가 정치와 무관한 순수한 내면의 언어로만 남을 수는 없습니다. 회중은 교회 밖에서 이미 정치적 긴장, 사회적 갈등, 가치 충돌, 신뢰의 해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회중의 실제 삶을 다루는 행위라면, 설교는 자연스럽게 공적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마주함의 방식이 정파적 선동이 될 것인지, 아니면 공공적 분별과 공동체적 성숙을 이끄는 방식이 될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5. 현황 분석 1: 한국사회는 양극화와 신뢰 약화의 국면에 들어서 있다
오늘 한국사회의 갈등은 단순히 크다는 수준을 넘어 상시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90%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고, 그중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은 가장 심각한 갈등 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념 갈등은 단지 정치 뉴스의 언어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관계와 일상적 판단, 공동체의 대화 분위기까지 규정하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갈등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조사에서는 가치관 차이와 이해 대립이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더 많이 지목됩니다. 이는 오늘의 사회 갈등이 “누가 더 가난한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무엇을 선으로 볼 것인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라는 가치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설교가 세계관과 가치 판단을 다루는 행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상황은 강단과 직접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가까운 관계에 대한 신뢰 하락은 교회 공동체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지인과 이웃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더 쉽게 서로를 의심하고, 갈등을 감당할 공통의 기반을 잃고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 역시 같은 사회 안에 존재하는 만큼 이 변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강단이 공공성의 언어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사회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신뢰와 대화 능력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6. 현황 분석 2: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에 대한 기대는 엇갈린다
교회 안에서 설교와 정치의 문제는 단순히 외부 이슈의 유입이 아닙니다. 이미 교회 내부에서 목회자와 성도의 기대가 상당히 다르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치 뉴스에 관심이 많다고 응답한 비율은 성도 64%, 목회자 75%로 목회자가 더 높았고, 정치 뉴스 습득 경로에서도 목회자는 인터넷 포털과 유튜브 이용 비중이 성도보다 높았습니다. 즉 목회자는 성도보다 정치 이슈에 더 자주 노출되고,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교회의 정치 개입에 대한 태도는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성도는 교회가 정치 문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더 높았고, 목회자는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응답이 더 높았습니다.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목회자가 훨씬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이 차이는 강단에서 정치 문제를 다룰 때 단순히 “옳은 내용을 말하면 된다”는 접근이 통하지 않는 이유를 보여 줍니다. 회중은 이미 수용성의 측면에서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설교 시간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수용도는 매우 낮습니다. 성도는 개인적 모임에서의 정치 발언에도 절반 이하의 동의만 보였고, 설교에서의 정치적 발언 허용도는 13%에 그쳤습니다. 정치적 설교와 기도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성도와 목회자 모두 부정적 영향이 긍정보다 더 크다고 응답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강단이 정치 현실을 다룰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방식이 기존의 직접적 정치 발언이나 진영적 언어로는 공동체를 세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교회 안 정치 토론에 대해 성도와 목회자 모두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고, 정치 토론 후 성도 절반 가까이가 관계가 멀어졌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정치 문제 자체보다 그것을 다루는 방식과 공동체적 역량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7. 현황 분석 3: 한국교회 설교는 공공성 상실과 정파성의 위험 사이에 놓여 있다
설교학 연구는 오늘 한국교회 설교의 중요한 문제로 설교의 사사화를 지적합니다. 이는 설교의 메시지가 개인의 위로, 내면적 결단, 사적 신앙생활에만 머무는 경향을 뜻합니다. 이런 설교는 공동체 전체의 성숙과 변화, 사회적 책임,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공적 사명을 충분히 다루지 못합니다. 설교가 회중 개인의 선택과 감정 차원으로만 축소될 때, 교회가 사회 속에서 어떤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기능도 약화됩니다.
서지마의 연구는 이 문제를 보다 분명하게 정리합니다. 설교는 본래 공공성을 가지며, 하나님께서 신자와 교회에게 맡기신 공적 영역에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설교는 오랫동안 개인의 일상과 사적 영역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고, 그 결과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적 반응을 형성하는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이 점에서 설교의 공공성 회복은 선택적 추가과제가 아니라, 설교가 설교답기 위해 필요한 본래적 회복입니다.
그러나 공공성을 회복한다고 해서 곧바로 정치적 설교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편에는 정파성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장형철의 연구는 한국 개신교 보수 진영의 정치 담론이 정권에 따라 지지와 비판의 방향을 달리하며, 특정한 자기 정체성과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해 왔다고 분석합니다. 정치 담론이 신앙 공동체를 세우기보다 진영의 경계와 적대감을 강화할 때, 그것은 공공적 설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설교가 될 위험이 큽니다.
따라서 오늘 강단은 두 가지 위험을 동시에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는 정치와 사회를 전혀 말하지 않는 사사화의 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정당과 진영의 언어를 강단에 이식하는 정파화의 위험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둘을 넘는 제3의 길, 곧 공공성을 가지되 정파성은 절제하는 설교의 형식입니다.
8. 현황 분석 4: 오늘의 정치 설교는 ‘정당 지지’보다 ‘공적 분별 형성’이 더 중요하다
정치적 설교를 다룬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강조합니다. 정치적 설교는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직접 지지보다,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윤리를 성서의 권위 아래 제시하는 설교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윤석민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설교는 회중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책임을 동반해야 하며, 공감 가능해야 합니다. 또한 설교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보다, 회중이 스스로 생각하고 분별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적 정치 설교는 세대 차이와 사회적 현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중요합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서로 다른 정치사회적 기억을 가진 세대가 함께 존재하며, 이 때문에 설교가 정파적 언어로 흐를 경우 공동체의 긴장이 쉽게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설교는 우선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절대적 가치, 곧 정의, 책임, 공동선, 사회적 재통합, 비폭력적 태도 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제안됩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 설교 연구는 설교자의 포지셔닝을 “알지 못함”과 “곁에 섬”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설교자가 모든 사안에 대해 즉각적이고 단정적인 해답을 내놓는 전문가처럼 서기보다, 회중과 함께 현실을 읽고, 고통과 갈등의 현장 곁에 서서, 말씀 안에서 분별을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태도는 정치 설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강단은 모든 사안을 결론 내리는 판정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공동체가 더 성숙한 판단을 하도록 돕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의 정치 설교는 특정 정치세력을 향한 충성심을 조직하는 설교가 아니라, 분열된 시대에 회중의 양심과 공동체의 공적 책임을 깨우는 설교여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 설교를 정파화에서 구해 내는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9. 논의: 설교는 정치 선동이 아니라 공공적 목회 행위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종합하면, 오늘 설교와 정치의 문제는 세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이념 갈등과 신뢰 약화가 심화된 양극화 국면에 들어서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정치에 대한 목회자와 성도의 기대가 크게 엇갈립니다.
따라서 오늘 강단의 과제는 정치 참여의 확대 자체보다, 공공적 분별을 형성하는 방식의 재구성에 있습니다.
이 점에서 설교는 정치 선동이 아니라 공공적 목회 행위여야 합니다. 설교는 정치를 회피할 수 없습니다. 회중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 정치와 사회 구조, 갈등과 불의, 가치 충돌이 깊이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가 곧바로 특정 진영의 언어를 반복하는 순간, 강단은 복음의 공공성을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공공적 목회 행위로서의 설교는 세 가지 특징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둘째, 정파적 분노를 복음으로 오인하지 않습니다. 셋째, 회중이 공동체 안에서 더 성숙한 판단과 책임을 감당하도록 돕습니다. 다시 말해 공공적 설교는 정치를 말하되, 정치적 흥분을 조직하는 대신 공적 양심을 형성하는 설교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정치적 발언의 양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를 다루는 설교의 질을 높이는 일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분리된 피난처가 아니라면, 강단은 세상의 갈등을 성경의 빛 아래 해석하고 공동체의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향 제시는 진영의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 곧 진실, 정의, 책임, 화해, 공동선의 언어여야 합니다.
10. 실행 프레임 제안: 양극화 시대 강단 재구성을 위한 4가지 방향
10.1 공공성의 회복
첫째 방향은 설교를 다시 공적 책임의 언어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단이 매주 정치 현안을 해설하거나 특정 정책을 평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회중이 살아가는 실제 삶의 자리와 사회적 현실을 설교 안에서 지속적으로 연결해 주는 일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의 설교는 개인의 위로, 내면의 평안, 신앙적 결단을 강조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직장과 가정, 지역사회와 국가 속에서 어떤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룹니다. 그 결과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는 경건한 언어를 듣지만, 교회 밖 현실을 해석할 성경적 틀은 충분히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공공성의 회복은 “정치 설교를 더 많이 하자”가 아니라, 설교의 주제와 적용 범위를 넓히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의, 진실, 공동선, 약자 보호, 책임, 화해, 권력 사용, 시민적 태도, 공적 정직성과 같은 주제는 특정 정당의 의제가 아니라 성경적 삶의 일부로 꾸준히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교회력 설교나 본문강해 속에서도 이런 연결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선지서 본문에서는 권력과 우상 문제를, 복음서 본문에서는 공동체 윤리와 이웃 사랑을, 바울서신에서는 질서와 책임, 양심과 자유의 문제를 공공적 차원까지 확장하여 다룰 수 있습니다.
실천적으로는 교회가 연간 설교 기획 단계에서부터 “공공적 주제”를 미리 배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1년에 한두 차례만 사회 문제를 특별 설교로 다루는 방식보다, 설교 시리즈 전체 안에 공동체성, 책임, 이웃, 사회적 약자, 진실과 분별, 공동선의 주제를 분산 배치하는 방식이 훨씬 자연스럽고 저항도 적습니다. 또한 설교문 작성 단계에서 “이 메시지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가, 아니면 공동체와 사회적 차원까지 열어 주는가”를 점검하는 질문을 넣을 수 있습니다. 결국 공공성의 회복은 강한 정치 발언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세상 속에서 신앙적으로 살아갈 언어를 강단이 꾸준히 제공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10.2 정파성의 절제
둘째 방향은 강단에서 정파적 언어를 절제하는 것입니다.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말은 종종 곧바로 정치적 적극성으로 오해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지점이 가장 위험합니다. 설교자가 현실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도로 말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특정 정당, 특정 인물, 특정 진영의 언어를 반복하게 되면 회중은 복음의 해석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 표명을 듣는다고 느끼게 됩니다. 특히 한국교회처럼 세대와 계층, 정치 성향이 다양한 회중이 함께 있는 공동체에서는 이런 방식이 곧바로 공동체의 긴장과 이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파성의 절제는 단지 표현 수위를 낮추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강단의 언어 질서를 다시 세우는 문제입니다. 설교자는 정치적 사안을 다룰 때 “누구 편에 설 것인가”보다 “무엇이 성경적으로 문제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정당 이름, 후보 평가, 선거 구호, 진영 프레임을 반복하는 대신, 그 사안 안에 들어 있는 더 근본적인 가치 문제를 끌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정, 생명, 책임, 진실, 권력 남용, 공동체 파괴, 혐오와 배제 같은 범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회중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충성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앞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게 됩니다.
실천적으로는 설교 준비 과정에서 몇 가지 자가 점검 기준을 둘 수 있습니다. 첫째, 이 내용이 성경 본문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최근 뉴스 소비에서 바로 가져온 반응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 특정 진영에 적용할 말이 아니라면 반대 진영에도 같은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셋째, 설교를 들은 회중이 “누구를 더 미워해야 하는가”보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묻게 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넷째, 설교자가 개인적으로 강한 정치적 감정을 가진 사안일수록 초고를 바로 사용하지 않고 하루나 이틀 정도 숙성시키는 절차도 유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파성의 절제는 침묵이 아니라, 복음의 권위를 정당의 언어보다 위에 두는 훈련입니다.
10.3 회중의 분별 형성
셋째 방향은 회중이 스스로 분별하도록 돕는 설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정치와 관련된 설교가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종종 회중의 분별을 돕기보다 설교자의 결론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양극화 시대에 공동체를 세우는 강단은 “정답을 대신 내려주는 강단”보다 “분별의 틀을 제공하는 강단”이어야 합니다. 오늘 회중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사안에 대한 즉각적 결론보다, 무엇을 기준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경적 안목입니다.
이를 위해 설교는 설명, 해석, 질문, 성찰, 적용의 흐름을 보다 의식적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설교는 현실을 단순화하지 않고 설명해야 합니다. 어떤 사회 문제든 그 배경과 구조가 있으며, 회중이 느끼는 감정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설교는 그 현실을 성경의 큰 가치 틀 안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편적 구절 인용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인간의 죄성, 공동선, 정의, 화해, 책임과 같은 더 큰 틀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 설교는 회중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떤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누구를 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우리의 말과 태도는 공동체를 살리는가 무너뜨리는가와 같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적용은 특정 정치 행동을 지시하는 방식보다, 성도가 공적 공간에서 어떤 태도와 윤리를 가져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합니다.
실천적으로는 설교문 안에 “회중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을 의도적으로 넣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문제를 단순히 내 편과 남의 편의 문제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진실을 확인하기보다 분노를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말은 정의를 세우는가, 아니면 적대감을 키우는가” 같은 질문은 회중을 사유하게 만듭니다. 또한 교회는 설교 후 소그룹 나눔 질문을 제공하여, 설교의 메시지가 곧바로 정치 논쟁으로 흐르지 않고 신앙적 성찰로 이어지게 도울 수 있습니다. 결국 건강한 정치 관련 설교는 회중을 설교자의 결론에 종속시키지 않고, 말씀 앞에서 더 성숙한 판단을 하도록 훈련하는 설교입니다.
10.4 교회의 대화 역량 강화
넷째 방향은 강단 바깥에서 교회의 대화 역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교회가 정치 문제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이 주제를 한 번 꺼내는 순간 공동체 안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거나 관계가 악화되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가 보여 주듯, 교회 안 정치 토론은 쉽게 관계적 거리 증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정치가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서로 다른 의견을 신앙 안에서 다루는 훈련을 충분히 해 오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설교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공동체가 안전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대화 역량 강화의 핵심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말하자”가 아니라, “어떻게 다르게 말하면서도 공동체로 남을 것인가”를 배우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교회 안에 대화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정죄하지 않기, 정치 성향으로 신앙을 판단하지 않기,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사실처럼 말하지 않기, 말하기보다 먼저 듣기, 감정을 표현하되 공격하지 않기 같은 기본 규칙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 규칙 없이 정치 대화를 열면, 결국 말이 센 사람이나 확신이 강한 사람 중심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실천적으로는 설교 후 곧바로 자유토론을 붙이는 방식보다, 단계적 구조가 더 안전합니다. 예를 들어 첫 단계는 교육입니다. 성경적 공공성, 기독교 시민성, 진실한 말하기, 갈등 속 그리스도인의 태도 같은 주제를 다루는 짧은 교육이 먼저 필요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소그룹 리더 훈련입니다. 리더들이 의견 충돌 상황에서 중재하고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정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제한된 포럼 운영입니다. 전체 자유토론보다, 진행자가 있고 발언 규칙이 분명한 소규모 포럼이나 질의응답이 더 적절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후속 목양입니다. 정치 대화 이후 상처받거나 불편함을 느낀 성도를 살피는 후속 접촉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교회가 정치 관련 공개 포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규모와 문화에 따라, 어떤 곳은 소그룹 나눔 질문 제공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고, 어떤 곳은 성인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강단이 던진 메시지가 공동체 안에서 왜곡되거나 폭발하지 않도록, 이를 받아낼 대화의 그릇을 교회가 함께 준비하는 것입니다. 설교가 씨를 뿌린다면, 대화 구조는 그 씨가 관계 파괴가 아니라 공동체 성숙으로 자라게 하는 토양입니다. 결국 양극화 시대에 건강한 강단은 혼자 말 잘하는 강단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더 성숙하게 듣고 말하도록 돕는 강단이어야 합니다.
11. 결론
설교는 정치 앞에서 침묵할 수 없습니다. 회중이 살아가는 현실이 이미 갈등과 양극화, 가치 충돌, 신뢰 붕괴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는 정치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와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강단은 복음의 공공성을 드러내기보다, 정파적 충성의 도구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질문은 “설교가 정치적이어야 하는가”가 아닙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설교는 어떻게 공공성을 회복하면서도 정파성을 경계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강단이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되 진영의 분노를 반복하지 않고, 회중의 양심과 공동체의 분별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는 데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정치적 열정보다 목회적 분별입니다. 그리고 그 분별은 결국 설교에서 시작됩니다. 양극화 시대의 강단은 어느 편의 확성기가 아니라, 분열된 사회 한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공동체적 책임을 다시 배우게 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설교가 그렇게 공공성을 회복할 때, 강단은 정치에 휩쓸리는 자리가 아니라 교회를 다시 세우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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